마당엔 술잔 띄운 물길 굽이치고…다산도 사랑한 백운동 별서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1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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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정민·김춘호 지음
368쪽·1만9000원·글항아리

호남에 전통 원림(園林·정원)이 소쇄원, 다산 초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에 백운동(白雲洞) 별서(別墅·별장)가 있다.

강진의 양반 원주 이씨 이담로(1627~?)가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1684~1767)을 데리고 들어와 이곳에 살기 시작했다. 조손이 20년 동안 함께 정원을 가꿨다. 이담로는 세상을 뜨며 ‘평천(平泉)의 경계’를 남긴다. 이는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가 그의 별서인 평천장을 두고 자손에게 “절대로 남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 나온 말이다. 백운동 별서는 세기가 4번 바뀌는 동안 아들에서 손자로 12대째 이어졌다.

이곳은 이담로 당대부터 명원(名園)으로 손꼽혔다. 5대 동주(峒主) 이시헌은 강진에 귀양와 있던 다산 정약용의 막내 제자가 됐다. 정약용은 이곳을 방문한 뒤 ‘백운동 12경’을 명명하고 1경 옥판상기(玉版爽氣·옥판봉의 상쾌한 기운)부터 12경 운당천운(篔簹穿雲·운당원에 우뚝 솟은 왕대나무)까지 그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다. 다산은 자신을 스승처럼 섬긴 초의선사에게는 백운동 뿐 아니라 다산초당까지 그리게 한 뒤 합쳐 백운첩(白雲帖)을 남겼다. 백운동과 다산초당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 겨뤄보려 한 것.

별서 마당에는 유상곡수(流觴曲水·술잔을 띄울 수 있도록 만든 구부러진 물길)가 굽이친다.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남아있는 곳은 이곳 뿐이다.

“젊어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성리(性理)의 글만을 궁구했다. 가난한 생활을 편히 여겨 지팡이 짚고 소요했다. 갑 속에 거문고 하나, 서가에 만 권의 책을 쌓아두었다. 흥이 나면 왕희지의 난정첩(蘭亭帖)을 펴 놓고 물 흐르듯 붓을 휘둘렀다.”

친족이 이시헌의 백운동 생활을 회고한 글이다. 동백나무 그늘 아래서 지난겨울의 매화향을 맡는 선비의 마음이 전해진다. 저자 정민 한양대 교수는 “백운동은 조선 별서 정원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공간”이라며 “정약용의 제다법(製茶法)에 따라 떡차가 만들어진 차 문화의 현장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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