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일주일만에 2쇄… 신인답지 않은 시인의 내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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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철과 오크’ 송승언 시인

송승언 시인은 사진 촬영할 때만 빼고 수첩과 필기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늘 뭐라도 쓴다. 늘 쓰는 상태를 유지해야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송승언 시인은 사진 촬영할 때만 빼고 수첩과 필기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늘 뭐라도 쓴다. 늘 쓰는 상태를 유지해야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성복 김소연 시인, 이광호 조재룡 평론가는 콕 집어 그의 첫 시집을 가장 기다린다고 했다. 기다리던 시집이 최근 출간됐다. 송승언 시인(29)의 첫 시집 ‘철과 오크’(문학과지성사)다. 그는 201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신인이다. 문단의 기대를 모은 덕분일까, 신인의 첫 시집으로는 드물게 초판 1500부를 찍은 지 일주일 만에 1000부를 더 찍었다.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송 시인에게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유부터 물었다. “운이 좋았어요. 요즘 수사가 현란하고 난해해서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인 시도 많은데, 전 일단 눈에 쉽게 읽히도록 쓰려고 했어요.”

송 시인은 자신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로 ‘새와 드릴과 마리사’를 추천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골목은 차다 골목은 반짝인다 골목은 깊이를 잃은 채 골목은 갈라진다 골목은 둘로 나뉜다/ 셋으로도 나뉜다 넷으로도 나뉜다”

“제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언뜻 스치는 풍광을 반복하는 거예요.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는 풍경들을 되새길 때 우리의 머릿속에 남는 잔상이 있어요.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읽었다는 이미지를 얻는 것, 저는 이것이 시에서 음악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원래 소설가가 되겠다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이시영 시인에게 배우면서 시에 눈떴다. 시인으로 진로를 확정한 것은 2006년 겨울 군대에 입대한 뒤였다. 그는 군대에서도 ‘쓰는 감’을 잃지 않으려고 짬짬이 글을 썼다.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없으니 소설 대신 시에 집중했다. 당시 군대 인트라넷에 취미로 시를 쓰는 군인들이 만든 ‘시인부락’ 게시판도 도움이 됐다. 그곳에 습작시를 올리며 동료 군인들과 감상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문학 비전공자가 게시판에 올린 제 시를 읽을 수나 있을까’라며 오만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아주며 소통했어요.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시도 혼자 쓰면 의미 없다, 독자가 있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시 ‘물의 감정’에서 “물고기들은 빛나는 물의 양상을 배운다”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 ‘돌의 감정’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애초에 배운 게 없으니 어떤 사물에도 레테르를 붙이지 않기로 오늘 식단에 대해 침묵하기로 음식이 어떠했더라도 그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므로”라고 번복한다. 여기에 그의 시작(詩作) 각오가 담겨 있다.

“삶이든 시를 쓰는 일이든 어느 하나가 분명히 옳다고 해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것을 반복하면 항상 관습이다 생각하고 의심하려고 들 겁니다. 앞으로도 스스로 끝없이 틀렸다고 주문을 걸면서 수많은 시인이 가지 않은 제 길을 찾아가야죠.”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철과 오크#송승언#시인#신인#물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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