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융성기 베네치아, 출판시장도 풍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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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장 베네치아/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김정하 옮김/388쪽·2만 원·책세상

수상택시를 타고 베네치아로 들어가다 보면 여러 성당 가운데 유독 ‘성 마르코’ 성당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슬람풍이 느껴지는 외관만 보면 여기가 유럽인가 싶을 정도다. 실제로 이슬람 건축물의 단골 소재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성당을 뒤덮고 있다. 성 마르코 성당을 마주하면 15, 16세기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선 베네치아의 영광을 상상할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 인구 15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는 베네치아와 파리, 나폴리 등 세 곳뿐이었다.

베네치아의 출판시장도 이런 세계사적 위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가 교황이 전 유럽에서 군림하던 이 시기에 베네치아에서 꾸란(이슬람 경전)이 인쇄됐다는 사실이다. 꾸란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키릴어, 세르비아어 등으로 적힌 다양한 종교 서적도 이곳에서 간행됐다. 500년간 소문만 돌다가 1987년 한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된 베네치아산 꾸란은 종교적, 문화적 장벽마저 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기원을 엿보게 한다. 베네치아 출판업자들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서 대목을 보기 위해 꾸란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4차 십자군 전쟁을 유발해 각종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한 베네치아의 과거사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저자는 전성기 베네치아의 문화 융성을 출판시장의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예컨대 유럽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만든 곳은 구텐베르크의 독일이었지만 출판시장 규모는 베네치아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출간된 모든 책의 절반가량이 베네치아에서 나왔다. 우리가 흔히 ‘이와나미 문고본’을 떠올리는 포켓용 책인 문고본도 베네치아의 출판업자 알도 마누치오가 처음 만든 것이다. 심지어 역사상 첫 포르노 서적으로 알려진 ‘음란한 소네트’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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