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통스러운가?… 견뎌내는 것이 인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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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미디어 아티스트 빌 비올라씨… 서울 국제갤러리서 개인전

각각 2005, 2009년 촬영한 남녀의 움직임을 나란히 놓은 작품 ‘Night Vigil’ 앞에 선 빌 비올라.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국제갤러리 제공
각각 2005, 2009년 촬영한 남녀의 움직임을 나란히 놓은 작품 ‘Night Vigil’ 앞에 선 빌 비올라.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국제갤러리 제공
“매스미디어 시대는 모든 인간을 ‘타자의 고통을 지켜보는 증인’으로 만들었다.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필연적 고통에 대응하는 인간의 희생과 인내가 지닌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다.”

설명을 듣기 전에 작품만 보고 나서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사디스트’라고 생각했다. 5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미국 미디어 아티스트 빌 비올라(64). 이번에 내놓은 영상작품 7점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만만찮은 고행을 겪는다.

두 발목을 밧줄에 묶인 채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물벼락을 맞고(‘Water Martyr’), 몽글몽글 끓어오르는 아지랑이를 헤치며 하염없이 사막을 걷고(‘Ancestors’), 머리 위로 쏟아붓는 시커먼 오물을 홀로 선 채 컥컥대며 온몸으로 받아낸다(‘Inverted Birth’). 영상 속 배우들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5일 오전 간담회를 앞두고 작품을 둘러보던 몇몇 기자가 수군거렸다. “어머, 저거 합성인가?” “아니야. 정말 하는 거잖아. 너무 힘들었겠다.”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후 명성을 얻은 비올라는 1970년대 초 시러큐스 에버슨 미술관에서 일할 무렵 백남준의 전시 설치를 돕기도 했다. 영상 기술을 활용해 인간 정신과 심리의 흐름을 표현하는 데 천착해 온 그는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기술을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호흡의 흐름을 유지하지만 인간은 그로 인한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예전 작품 중 프레임 속 배우들에게 1분 동안 각자 맡은 감정을 표출하도록 한 뒤 필름을 극단적으로 느리게 돌려 10분 길이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 있다.”

‘Inverted Birth’는 오물 받는 남자의 모습을 촬영한 뒤 필름을 거꾸로 돌려 ‘더럽혀진 몸으로부터 오물이 하늘로 솟아오르듯 벗겨져 보송보송 말끔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미디어로 인한 시간 조작을 통해 존재의 변화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자 한 작업이다.

2003년 현대미술 작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할 만큼 찰나의 이미지는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졸음을 꾹 참고 짧게는 7분, 길게는 28분에 이르는 영상을 모두 지켜본 관객에게 작가가 추구했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각성”이 넉넉히 전해질지는 의문이다. 작가의 명성에 신경 쓰지 않고 솔직한 시선으로 접근한 관객에게는 호오(好惡)가 뚜렷이 갈릴 전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빌 비올라#미디어 아티스트#서울 국제갤러리#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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