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발언 이어 악재… 美국무부 “동맹관계 영향 없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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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당한 美대사/한미관계 영향]

주변 참석자들이 범인 제압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진보성향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씨가 범행 직후 주변 참석자들에게 제압된 뒤 인상을 찡그린 채 엎드려 있다. 문화일보 제공
주변 참석자들이 범인 제압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진보성향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씨가 범행 직후 주변 참석자들에게 제압된 뒤 인상을 찡그린 채 엎드려 있다. 문화일보 제공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사건 발생 직후인 5일 오전 9시 30분경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이송된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동 도중 미국 측으로부터 “감사하지만 안정이 필요하니 다음으로 미뤄 달라”는 연락을 받고 발길을 돌렸다. 이보다 10여 분 먼저 병원에 도착한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 사령관이 응급실에 들러 문병을 마친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리퍼트 대사의 카운터파트로 막역한 사이인 조 차관까지 돌려세울 만큼 사건 직후 미국의 신경이 곤두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존 무초 초대 주한 미국 대사가 1949년 4월 부임한 이래 현직 미국 대사가 한국에서 테러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한미 관계 앞날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고심하고 있다.

○ 한국, 타국 외교관 보호 책임

미 국무부는 리퍼트 대사 피습 직후 “이번 사건이 한미 동맹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미 관계를 잘 다져 가자”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한국 외교부로부터 “매우 유감이며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이번 사건으로 한미 관계가 급랭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한국으로선 미국에 엄청난 빚을 졌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모든 외교관은 주재국에서 신변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한국이 적절한 경호를 제공했는지, 범행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책임 논란은 불가피하다.

청와대는 김관진 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열어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집중 논의했다. 범인의 반미·종북 행적과 배후세력 존재 여부도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6월 미국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4월 방미에 대응해 일정과 의제가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이번 테러 사건은 6월 박 대통령의 방미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 정계 “단독 범행 아닌 반미 감정 표출”

리퍼트 대사의 지인인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CNAS) 아태안보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에는 대대적 반미 시위를 재가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며 “리퍼트 대사는 부임 직전까지 미 국방부 장관 측근으로 일했고 이라크 참전 경험까지 있어 반미 테러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용의자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한국 내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외치는 ‘반미 세력’의 상징적 공격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소식통은 “중동 같은 위험 지역이 아닌 동맹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미국 대사가 공격받은 것은 해괴한 일”이라며 “워싱턴 정가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내다봤다.

범인 김기종 씨가 2010년 당시 주한 일본 대사를 공격한 전력이 있고 최근 국내에 ‘미국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감싸고돈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봉합’ 발언 파장으로 미국이 한국에 느끼던 ‘피로감’이 한결 강화될 수도 있다. 사건은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북한과 같은 “한미 합동 훈련은 전쟁연습”이란 주장을 테러 현장에서 외쳤고 북한도 이례적으로 이날 신속하게 “미국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비록 김 씨가 북한과 직접 연계되지 않았다고 해도 피해자인 미국이 앞으로 북한과 관련한 요구를 하면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거나 거부하기가 힘들게 됐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정안 기자
#리퍼트 대사 피습#미국 대사 테러#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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