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김정은 訪中, 잠행은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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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7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5월 베이징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을 찾았고, 이듬해에는 상하이에 불쑥 나타나 푸둥의 마천루를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는 감탄사를 쏟아 내 화제가 됐다. 2011년 12월 사망하기 전인 그해 5월 마지막으로 헤이룽장 성의 혁명 유적지와 장쑤 성 양저우 등을 둘러봤다.

국가 지도자가 해외 방문길에 나서면 어떤 정책이 논의되는지가 관심사지만 김정일 방중은 ‘잠행’과 ‘숨바꼭질’이 화두였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일주일 남짓 중국 이곳저곳을 다닌 뒤 북한으로 돌아가면 그날 저녁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는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했다”고 보도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북-중 특수 관계’만이 연출하는 드라마였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김정일을 만난 것도 이례적이었다.

김정일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않는 데다 혈액 투석 등을 이유로 시속 50∼60km의 저속 전용 열차만 이용했다. 방중 때마다 그의 전용 열차가 지나는 철로 구간 이용을 통제해 중국 국민은 인터넷 등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올해 초는 집권 3년 차를 맞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외국 방문이 화두다. 김정은은 4월 22,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그가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은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도 초대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밝혀 김정은의 참석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북한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비동맹국 회의인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는 1965년 김일성 주석이 참석해 연설했다. 하지만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으며 북한의 인권 유린이 국제적으로 비판받는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경호 문제가 간단치 않은 데다 다수의 지도자가 모이는 자리여서 김정은만 특별히 배려하기 힘들어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모스크바 방문은 중국과의 관계가 변수로 작용한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월 정례 브리핑에서 “북-중 양국 교류 왕래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논평했다. 김정은이 중국에 앞서 러시아를 먼저 가도 이에 개의치 않을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냉각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의 모스크바행이 이뤄지면 북한은 ‘원중친아(遠中親俄)’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북한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모스크바 방문을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여 중국이 북한을 더 방치할 경우 러시아와 밀착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도 북한을 방치할 수만은 없어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김정은이 자카르타나 모스크바가 아닌 중국에 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김정은이 중국에 올지, 온다면 언제 올지 등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김정일식 잠행’은 안 된다. 중국도 북한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국가 관계’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 터에 김정일 방중 때처럼 김정은이 탄 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새벽에 몰래’ 넘어오는지 단둥에서 또다시 밤새워 지켜보게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사전에 예고도 하고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방문하길 바란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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