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민주주의는 과연 태생부터 위대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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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수수께끼/존 던 지음·강철웅 등 옮김/354쪽·1만8000원/후마니타스

“우리가 믿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영화 ‘미션’(1986년)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멘도사의 처절한 고행을 만류하는 동료 신부들의 집단적인 요구에 이렇게 응수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성경 구절을 죽음으로 지켜낸 가브리엘 신부에게 최고의 가치는 오직 신이었을 뿐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었다. 사역지에 살고 있던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고향에서 내쫓으라는 스페인 본국과 바티칸의 지시에 맞서 멘도사가 원주민들과 함께 총칼을 잡을 때에도 그는 무력 항쟁을 거부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끝까지 고수했다. 민중의 뜻을 섬기는 것이 최대 미덕인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가브리엘 신부의 행보는 반동(反動)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누구도 가브리엘 신부의 소신과 희생에 돌을 던질 수 없으리라.

민주주의의 기원과 역사적인 흐름을 심층 고찰한 이 책은 어쩌면 멘도사가 아닌 가브리엘 신부 쪽에 가까운 듯하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요 지상과제로 여겨지는 21세기의 관점에서 저자는 ‘과연 민주주의가 태생부터 위대했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 던진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대 민주주의의 원류인 아테네 민주주의는 현재의 관념이나 가치관, 기대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저자에 따르면 아테네에 민주주의를 도입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덕적, 지적 확신이 없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단지 경쟁관계에 있던 귀족세력과 라이벌 국가 스파르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1960년대 케임브리지 학파를 이끈 정치사상사 분야의 석학인 저자는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기피의 대상이었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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