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학문 2500년, 새로움 향한 인류의 행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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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진화/박승억 지음/368쪽·1만8000원·글항아리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철학 강의. 논리적 추론을 통해 개념의 가능성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원의 문제를 찾는 신화와 궤를 달리한다. 동아일보DB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철학 강의. 논리적 추론을 통해 개념의 가능성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원의 문제를 찾는 신화와 궤를 달리한다. 동아일보DB
모든 학문에 저마다의 역사가 있듯 학문 자체에도 역사가 있다.

현상학과 학문 이론에 관해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이후 2500년 동안 변화해 온 학문의 역사를 조명한다. 시간에 따른 연대기적 정리가 아닌,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온 인간의 노력의 행보를 짚었다는 점에서 ‘학문의 진화’로 책을 이름 지었다.

저자가 보기에 학문의 진화는 고대 신화로부터 형이상학, 근대의 과학과 철학 그리고 현대의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구체성과 현실성을 획득해 온 과정이다. 신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주변 현실에 대한 지식을 제공했다. 사람들에게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고대의 문화공동체에 유의미했다. 신화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논리적 의미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등장한 것은 순수한 개념적 사유의 시작이기도 했다.

로마 신화의 비너스 여신이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위 사진)과 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공개됐던 나로과학위성 실물. 신화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변화는 구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동아일보DB
로마 신화의 비너스 여신이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위 사진)과 대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공개됐던 나로과학위성 실물. 신화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변화는 구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동아일보DB
근대의 과학은 한층 직관적이고 명료하다. 형이상학이 개념을 분석하는 일에 집중한 반면, 자연과학은 오해의 여지가 없는 수학적 언어와 실험이라는 ‘증인’을 내세운다. “사람들이 엄밀한 논리적 증명보다도 실험적 입증을 선호한 까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의 직접성 때문이었다.”(74쪽)

모든 것이 가시적으로 증명되는 과학은 축복이었을까?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마저 수치로 정리할 수 있다는(경제학) 점에서 이에 대한 질문의 답은 ‘예스’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쓰러졌는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 질문에 우울하게 고개를 젓는다. 지식과 합리성으로 무장된 기술이 생산력을 증폭시켰지만 그 결실을 분배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의 전문화는 또 어떤가? 저자는 독일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마르틴 우르반의 해프닝을 소개한다. 우르반이 학회에서 만난 식물학자에게 잔디밭에 핀 들꽃의 이름을 묻자, 그 식물학자가 놀라면서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죄송한데 제 전공은 보리입니다!” 지식이 넘쳐 나는 시대에 지식의 독점과 불균형 상태로 인한 ‘전문가 바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독자들에게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학문의 변화를 조망한 9장이 특히 흥미롭게 읽힐 듯싶다. 저자는 21세기 학문이 지식의 전문화에 맞서 전통적인 분과가 해체되고 학문 간 융합을 꾀하는 ‘통섭’으로 향하는 현상을 보여 준다. 지구 온난화 문제나 지구적 생태 위기 같은, 과학기술로 인해 빚어진 윤리적 문제의 성찰뿐 아니라 가상현실 같은 첨단기술이 펼쳐 낸 세계가 형이상학적 문제를 낳는 등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융·복합이나 경계 넘어서기라고 불리는 현상은 단순히 하나의 유행이라기보다는 이제까지의 학문이 다뤄 보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282쪽)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학문의 진화#학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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