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역사에서 무얼 배울까” 임진왜란을 통해 묻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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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배상열 지음/432쪽·1만6000원·추수밭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 ‘징비록(懲毖錄)’의 서두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한다.”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은 ‘징비록’의 교훈을 토대로 임진왜란 당시의 국내외 상황과 의문점, 주요 인물의 심리를 통해 임진왜란을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과 관련된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내용을 담았다.

대표적인 예가 통신사 김성일과 신립 장군. 김성일은 동료 통신사 황윤길이 1590년 일본을 다녀온 후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 달리 “전쟁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 보고했다.

김성일은 후대에 비판을 받아왔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이 정말 침공할 계획이 있다면 공공연히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당시 김성일의 판단이었다.

더욱이 일본 통일 후 내부 안정화에 급급했던 점을 고려할 때 당시 김성일로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인 분석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립 장군 역시 1592년 탄금대 전투에서 주력인 기병을 활용하지 못하고 조총부대에 속절없이 당한 무능한 장수로 기억된다. ‘징비록’에도 유성룡이 전쟁 전부터 조총의 막강함을 경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신립이 대비를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인 신립조차 조총의 위험성을 몰랐는데 유성룡이 전쟁 전부터 조총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징비록’이 전쟁이 끝난 후 집필됐기 때문에 결과에 맞춰 신립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1593년 평양성 전투는 전 세계 최신무기의 시험무대였다. 명군의 주요 화포 ‘불랑기’는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최신형 무기였고 일본의 조총 역시 신무기였다. 6·25전쟁 때 한반도에서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이 첨단무기를 쓰며 대치한 것과 유사하다. 명나라는 왜란 당시 ‘우리가 조선을 구한다’는 의미의 ‘항왜원조(抗倭援朝)’를 내걸었다. 약 350년이 지난 6·25전쟁 때도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 부분에서 책의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한반도에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592년 4월 선조가 왜군에 쫓겨 한양을 떠나며 백성들을 거짓으로 달래는 모습은 1950년 6월 미리 녹음된 담화로 서울시민을 위로하며 대전으로 피란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오버랩된다는 것이다. 가라앉는 배에 있던 학생들에게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을 하며 도망친 세월호 선장도 마찬가지다.

“위기를 겪으면 그 경험을 토대로 반성하고 한 단계 성숙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위기를 반복하고 있다.” 저자의 비판이다. 유성룡도 “후손들의 한국은 나의 조선과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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