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조작 정도가 아니라 창작에 가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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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오보카타 ‘STAP 세포’ 논문 날조 그 후 1년…
이화학연구소, ‘최종 조사보고서’ 공개

지난해 1월 30일 ‘STAP 세포’를 만들었다며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실험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①). 오보카타 박사는 120일 동안 3일 간격으로 배아줄기세포(검은 점)와 STAP 세포 (흰 점)의 수를 세어 그래프를 그렸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이 기간에 출 장으로 실험실을 비우기도 했다(②). 연구조사위원회는 동일한 사진을 방향만 틀어서 논문에 중복 게재한 사실도 밝혀냈다(③).동아일보DB·네이처 제공
지난해 1월 30일 ‘STAP 세포’를 만들었다며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실험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①). 오보카타 박사는 120일 동안 3일 간격으로 배아줄기세포(검은 점)와 STAP 세포 (흰 점)의 수를 세어 그래프를 그렸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이 기간에 출 장으로 실험실을 비우기도 했다(②). 연구조사위원회는 동일한 사진을 방향만 틀어서 논문에 중복 게재한 사실도 밝혀냈다(③).동아일보DB·네이처 제공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월 30일, 과학학술지 ‘네이처’에는 ‘하루코 오보카타(Haruko Obokata)’라는 이름이 저자들 중 맨 앞에 등장하는 논문 2편이 동시에 실렸다. 동물의 몸에서 떼어 낸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깐 담그는 자극만으로 간단하게 만능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름하여 ‘STAP(자극야기 다능성 획득) 세포’.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박사는 무명의 젊은 여성 과학자였지만 1949년 일본에 첫 노벨상을 안겨준 일본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 소속이었다. 현재 이화학연구소 소장인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교수도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다. 게다가 ‘3대 과학저널’로 불리는 네이처가 아닌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순식간에 ‘과학계 신데렐라’로 떠오른 오보카타 박사의 희대의 사기극은 이렇게 화려하게 시작됐다.

이화학연구소는 지난달 25일 연구조사위원회 이름으로 34쪽 분량의 ‘STAP 세포 연구논문 조사 보고서’를 일본어로 발표했다. 그리고 이달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 보고서를 영문판으로 처음 공개했다.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조작의 증거를 재구성했다. 또 한국인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이화학연구소 연구원회의 의장을 맡아 오보카타 건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유수 박사에게 현지 분위기를 들었다.

○ 뭘 조작했나… “손으로 그래프에 점 찍어”


네이처는 논문을 게재한 지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 2일 오보카타 박사의 논문 2편을 공식 철회했다. 1차 조사에서 “논문이 조작됐다”며 발표의 수위를 낮췄던 이화학연구소는 이번 보고서에서 “STAP 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3의 만능세포’가 없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조사위는 오보카타 박사의 논문에서 실험에 사용한 세포주와 실험동물 데이터를 꼼꼼히 비교했다. 그 결과 실험에는 서로 다른 줄기세포주에서 확립된 배아줄기세포가 사용됐으며, 이들 배아줄기세포가 배양 중이던 세포에 의도적으로 섞인 정황이 발견됐다. 또 논문에서 배아줄기세포와 STAP 세포가 이름이 뒤바뀐 채 기재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네이처가 오보카타 박사의 논문을 철회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오보카타 박사의 연구노트와 e메일 등 수년 간의 연구자료에서는 허술한 조작의 증거가 대거 나왔다. 배아줄기세포와 STAP 세포의 증식률을 측정한 그래프에서는 3일마다 두 세포의 개수를 세어 점을 찍은 것으로 돼 있는데, 이 기간에 오보카타 박사는 출장으로 실험실을 비우기도 했다. 실험실을 비운 날에는 손으로 점을 찍어 그래프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겹치는 점도 발견됐다. 조사위는 그래프를 ‘창작’에 가까운 조작으로 결론 내렸다.

오보카타 박사의 e메일에서는 연구 부정에 대한 두려움도 드러났다. 그는 “실험 결과가 갑자기 잘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를 몰라 무섭다”고 적었다. 조사위는 “이 즈음에 배아줄기세포가 섞여 들어갔다”면서 “누가, 어떻게, 왜 배아줄기세포를 넣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보카타 박사는 조사위와 함께 5개월간 STAP 세포 재현 실험을 진행했지만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다.

○ 지난달 이화학연구소 파면… 박사학위도 철회될 듯

오보카타 박사는 일본 사회에 ‘오보카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를 누렸지만 이화학연구소에서의 존재감과 역할은 미미했다. 그는 국내에 ‘주임’이라는 직함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유닛 리더(Unit Leader)’로 연구책임자 중에서도 가장 하위 직급이었다. 주임은 이화학연구소에서 가장 상위 직급의 연구책임자 소수에게만 부여되는 직함이다.

조사위는 오보카타 박사 외에도 이화학연구소 소속의 논문 공저자까지 조사 범위를 넓혔고, 이 중 일부는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박사는 “아직 징계 조치가 발표되지 않은 만큼 연구소 안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오보카타 박사의 멘토이자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사사이 요시키(笹井芳樹)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연구센터 부소장이 지난해 8월 자살하면서 STAP 세포 날조극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사사이 부소장은 일본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이자 최고의 석학으로 칭송받던 인물이다.

오보카타 박사는 지난달 21일 이화학연구소에서 파면 당한 뒤 현재 거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도 날조된 것으로 밝혀져 와세다대가 조만간 박사학위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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