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08요리의 淸… 초라한 맛의 혁명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혁명의 맛/가쓰미 요이치 지음/임정은 옮김/352쪽·1만6000원·교양인

1959년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의 거민식당 풍경. ‘공공식당은 우리의 큰 가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교양인 제공
1959년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의 거민식당 풍경. ‘공공식당은 우리의 큰 가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교양인 제공
코카콜라가 지구상에서 아직 진출하지 못한 나라는 북한과 쿠바뿐이다. 과거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에는 중국과 동유럽 등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에서 코카콜라 판매를 금지했다. 코카콜라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반원(反元) 개혁 정치를 내건 고려 말 공민왕은 변발과 몽골 옷뿐만 아니라 몽골 음식을 먹는 것까지 금했다. 음식은 이처럼 생물학적 행위에만 그치지 않는 한 시대 사회문화의 결정체다.

이 책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거대한 중국사를 훑는 미시사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1970년대 문화혁명 당시 중국의 음식문화를 직접 체험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세례를 흠뻑 받은 일본인이 극좌의 사상 투쟁에 내몰린 전체주의 사회를 음식을 통해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혁명 시기의 선전 포스터.
문화혁명 시기의 선전 포스터.
문화혁명 당시 중국 식당가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저자는 감시원 몰래 주민 자치조직이 운영하는 ‘거민식당’을 찾아갔을 때의 기막힌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손님들이 식당 전면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향해 마오쩌둥 어록을 복창하고 자리에 앉으면 묽은 국과 만터우(饅頭·찐빵), 러차이(熱菜·즉석에서 데워 먹는 요리)가 고작인 단출한 음식이 제공됐다. 요리 평론가인 저자는 거민식당 음식을 맛보고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맛에 나는 남몰래 ‘문화혁명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썼다.

황당한 것은 그 맛없는 식당을 중국인들이 경쟁적으로 찾아갔다는 것이다. 초라한 음식을 먹는 게 부르주아적 구태에서 벗어난 혁명적 행동으로 칭송됐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민식당에 수시로 가지 않으면 홍위병들에게 반동으로 낙인찍혀 수모를 당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요지경 세상이 따로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당시 중국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 간부들이 초대한 고급 음식점에서의 경험이 그것이다. 거민식당과 비교할 수도 없는 산해진미 속에서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 성 요리 차오터우취안쯔(草頭圈子·삶은 송아지 대창)가 접시에 담겨 나올 때였다. 간부들은 마오쩌둥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전원이 기립해 그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했다.

저자는 “건배는 왠지 몰라도 건성이었고 그 전에 나온 요리 ‘라오후페이샹(老虎飛翔·흰살 생선을 갈아 빚은 경단 조림)’을 앞에 뒀을 때 술잔이 더 떠들썩하게 오고 간 게 인상적이었다”고 적었다.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오히려 중국 요리의 최전성기는 청나라 시절이었다. 중원을 놓고 수많은 민족이 자웅을 겨룬 중국사에서 청의 개방성은 중국 요리의 다양성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청나라 황실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한족과 만주족 요리사들이 서로 솜씨를 뽐내며 개발한 총 108가지의 화려한 음식이 만한전석을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저자는 만한전석을 통해 한족 등 이민족을 국정 파트너로 받아들인 청나라의 통치철학을 조명한다. 예컨대 재상 격인 군기대신(軍機大臣) 아래 만주어 문서를 담당하는 만장경(滿章京)과 한족 문서를 담당하는 한장경(漢章京)을 둬 자연스러운 민족 간 융합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1984년부터 민간의 음식점 설립이 허용되면서 ‘문화혁명의 맛’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중국 음식이 진정 부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 순수한 만주족의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한족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의 맛이 점점 더 케케묵은 맛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혁명의 맛#문화혁명#중국#거민식당#홍위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