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모두가 한통속, 무법 판치는 세상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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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국가-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게리 하우겐, 빅터 부트로스 지음/최요한 옮김/416쪽·1만8000원·옐로브릭

여덟 살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뒤 무참히 살해돼 대로변에 버려졌다. 전날 밤 소녀가 갔던 부잣집 마루에서 소녀가 입었던 피 묻은 옷, 핏자국과 온갖 얼룩으로 더렵혀진 매트리스가 발견된다. 이 부잣집 주인 아들이 소녀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본 목격자의 진술도 있다.

하지만 소녀의 시신에서 검출된 정액 샘플을 비롯해 모든 증거는 사라지고 엉뚱한 사람이 감옥에 가게 된다. 변호사, 병원장, 경찰서장, 검사가 모두 범인과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영화 같지만 페루 우아누코 지방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남반구의 상당수 저개발국가에서는 이 소녀가 겪은 끔찍한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인도에는 노예노동이 일반화돼 있다. 마리암마 씨를 비롯해 벵갈루루 인근의 벽돌공장에 갇혀 일하던 노동자들은 탈출해 집으로 도망쳤다가 가족까지 공장주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경찰은 2년 동안 갖가지 이유를 대며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는다.

신혼여행지로 익숙한 필리핀의 세부는 아동 인신매매범들이 활개 치는 곳이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저자 게리 하우겐은 인권단체 인터내셔널저스티스미션(IJM)의 설립자다. 저개발국가의 무법 실태와 함께 1997년부터 폭력 피해자들을 구해 온 IJM의 활동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해마다 500만 명이 폭력에 내몰려 집을 빼앗긴다. 3000만 명은 노예다. 1000만 명이 재판을 받지 않고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한다. 저자는 저개발국가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만연한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폭력국가#게리 하우겐#빅터 부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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