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시대 이슈와 관련된 미술, 내일의 쓰레기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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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와 예술/앨런 앤틀리프 지음/신혜경 옮김/297쪽·1만8000원·이학사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을 미국 그래픽디자이너 프레디 베어가 콜라주로 재구성한 이미지. 이학사 제공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을 미국 그래픽디자이너 프레디 베어가 콜라주로 재구성한 이미지. 이학사 제공
‘이즘(ism)’ 붙은 단어는 타자(他者)의 움직임에 방향성을 부여하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다다이즘과 아나키즘 연구에 주력해 온 캐나다 미술사학자의 이 저서에서 학술서 이상의 의도를 찾기는 어렵다.

출간 8년 뒤 이뤄진 한국어 번역 결과물에서는 옮긴이가 부여한 시대성이 희미하게 읽힌다. 그리스어 ‘anarkhia’에서 온 ‘아나키’는 ‘권위적 지배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역자는 책 말미 닫는 글에 미국 시인 로버트 덩컨의 글을 콕 집어 다시 인용하며 자신의 시각을 얹었다.

“집단의 비인간성에 맞선 싸움은 바로 다음 국면에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인간적인 힘은 압도적이지만, 누군가의 계속된 저항은 다른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는 모든 이에게 강한 힘을 보탠다. 지금은 그처럼 부술 수 없어 보이는 족쇄를 마침내 부술 수 있는 힘.”

저자는 19세기 말 미국의 상업 미술에 대해 “검열관이 존중할 만하다고 여기는 경계 안에 확고히 머무르면서도 상품으로 팔릴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조정됐다”고 썼다.

“황제와 귀부인들을 위한 장식품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쁜 작가들은 그들의 예술적 비전에서 초점을 잃은 것”이라고 한 옛 소련 조각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말을 중요한 화두로 인용했다. 현상에 적용하면 덧없이 시간만 흘렀음을 돌이키게 하는 옛말이다.

옮긴이의 의도보다는 저자가 7장을 마무리한 문장에서 이 책을 지금 읽는 의미를 찾고 싶다.

“동시대 이슈와 관련된 미술 작업이 내일의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험에 의해 입증됐다. 예술을, 담론의 일부로 만들라.”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나키와 예술#앨런 앤틀리프#상업 미술#아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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