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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보는 음악’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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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보는 음악’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다

이진구 기자입력 2015-01-14 03:00수정 2015-01-1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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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의 뮤직다이어리 전설의 뮤지션들 ⑥ 전세계를 홀린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5세 때부터 음악을 시작한 마이클 잭슨. 그는 ‘Thriller’ ‘Bad’ ‘Dangerous’ ‘HIStory’ 등 숱한 곡을 히트시키며 팝의 황제로 군림했다.
팝페라테너 임형주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연재되고 있는 ‘팝음악을 대표하는 전설의 뮤지션들’ 6번째 주인공은 1993년 35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고, 단일 앨범으로는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며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베토벤 등을 제치고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1위에 꼽혔던 인물! 바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입니다.

○ 5세에 음악활동 시작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게리 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모의 가정에서 10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팰컨스’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아버지로부터 음악적인 영향을 받고 자랐지요. 잭슨은 5세 때부터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지요. 이후 1965년 아버지에 의해 형 말런 잭슨과 함께 형들이 활동하고 있던 음악그룹 ‘잭슨 브러더스’에 합류하게 되었고, 1966년 그룹 이름은 그 유명한 ‘잭슨 파이브’로 바뀌게 됩니다.

‘잭슨 파이브’의 명성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1968년 첫 싱글 ‘빅 보이(Big Boy)’를 발표합니다. 1969년 당시 흑인음악의 최고봉이었던 음반사 모타운 레코즈로 이적하고, 같은 해 발표한 ‘아이 원트 유 백(I Want You Back)’으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첫 1위를 기록합니다. 또한 연이어 발표한 ‘ABC’ ‘더 러브 유 세이브(The Love You Save)’ ‘아일 비 데어(I‘ll Be There)’까지 4장의 싱글앨범 모두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되지요. 이후 1975년 에픽 레코즈로 이적하면서 그룹 이름을 ‘잭슨스’로 바꿔 활동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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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시 존스와의 만남

‘잭슨 파이브’의 멤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3세의 나이로 솔로로 데뷔합니다. 첫 데뷔 싱글앨범이었던 ‘갓 투 비 데어(Got to Be There)’를 발표하여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4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데뷔 싱글로선 매우 좋은 성적이지요. 이어 이듬해인 1972년 잭슨은 자신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벤(Ben)’을 발표하여 자신의 솔로 커리어 사상 최초이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당당히 거머쥐게 됩니다. 이렇듯 성공적으로 솔로가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잭슨은 이후 1978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더 위즈(The Wiz)’에 출연하면서 당시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했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됩니다. 1979년 잭슨은 존스와 손잡고 첫 결과물이자 5번째 정규앨범인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발매하게 됩니다. 이 앨범으로 잭슨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 이미지에서 힘 있고 박력 넘치는 남성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외형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변신을 꾀하였는데요. 결과는 빌보드 앨범차트 3위라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여세를 몰아 잭슨은 존스와 함께 모두를 놀라게 할 새로운 정규앨범 작업에 착수하게 되는데, 1981년은 세계 최초의 음악 케이블 채널인 미국의 MTV가 개국을 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잭슨과 존스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의 새로운 탄생과 변화를 지켜보며 큰 영감을 받게 되는데, 바로 ‘뮤직비디오’였습니다. ‘뮤직비디오’는 당시로선 굉장히 파격적이고 새로운 형식의 매체였지요. 그리하여 이 둘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규모의 제작 기획과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훗날 MTV 뮤직비디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와 음반으로 꼽히게 될 6번째 정규앨범 ‘스릴러(Thriller)’를 1982년 발매하게 됩니다.

그는 ‘스릴러’를 시작으로 ‘배드(Bad·1987년)’ ‘데인저러스(Dangerous·1991년)’ ‘히스토리(HIStory·1995년)’ 등 정규앨범을 잇달아 발표하죠. ‘스릴러’로 1983년에 열린 제2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등을 수상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650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이후 2006년까지 1억 장 판매 기록) 단일 앨범으로는 역대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어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37주 동안 1위 및 전 세계 음악차트 1위라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 위대한 업적과 수많은 자선활동

마이클 잭슨은 짧은 기간 내에 그 어떤 아티스트도 성취하지 못한 엄청난 기록들을 이뤄내며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팝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데, 그의 나이 마흔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이렇듯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을 살던 그이지만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그는 전 세계적인 유명세로 인해 끊임없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활동을 해야 했기에 제대로 또래 친구들과 놀 수 없었던 그는 1988년 캘리포니아 주에 약 11km²(약 330만5300평)에 달하는 땅을 사들여 ‘네버랜드’라는 이름의 자신의 저택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이곳에 롤러코스터와 대형 워터파크 등을 설치하고 질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초대하여 마음껏 뛰어놀게 하였는데, 호사가들은 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그를 아동 성추행자로 몰아갔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그는 이처럼 억울한 누명을 이후에도 여러 번 써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언제나 이야기하며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세계 곳곳의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아동들을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게다가 세계 각지를 돌며 수백 회의 기금 마련 자선공연을 펼치는 등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985년에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해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라는 싱글앨범을 라이어넬 리치, 스티비 원더, 밥 딜런, 티나 터너, 빌리 조엘, 다이애나 로스 등 당시 팝음악계의 거물급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이 판매돼 또다시 전 세계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는데 잭슨은 여기에서 생긴 엄청난 수익금을 기부금으로 쾌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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