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 유병언 포상금 5억…‘대리기사 폭행 사건’ 마무리 해넘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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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2014] 그때 그 사건, 지금은?

《 분노와 슬픔, 때로는 감동으로 가득했던 2014년이 저물고 있다. 분노하고 눈물 흘려야 했던 나날이 그 어느 해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국민에게 눈물과 감동을 안겨줬던 이슈 중 상당수는 아직 ‘진행형’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경기 포천의 고무통 살인사건 이후 홀로 남겨진 어린이는 안정을 되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2014년의 4가지 뉴스, 지금은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는지 그 내면을 살펴봤다. 》  

9월, 세월호 유족의 대리기사 폭행 ▼

검찰, 金의원 소환 일정도 못정해… 대리기사는 유통회사서 새출발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의 피해자 이모 씨(42)는 이제 대리기사가 아니다. 이 씨는 9월 17일의 그 사건 이후로 대리기사 일을 그만뒀다. 폭행 후유증으로 2주간 병원에 있다 퇴원하자 가족들이 일을 못 나가게 막았다. 이 씨도 일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2주간 입원했던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았다. 200만 원이 넘는 병원비가 청구됐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비도 없었다. 살길이 막막했던 그때, 언론 보도를 지켜보던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 유통회사 사무실을 경영하던 그는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씨에게 무료로 법률적 지원을 해줬던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행변)’에서는 시민 성금을 모아줬다. 이 돈으로 병원비와 일을 쉰 동안 모자랐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이 씨는 본보 기자와 통화하면서 “건강은 회복됐고 밤에 일을 나가지 않아도 돼 만족한다”면서도 “연말 특수인데도 대리기사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 측으로부터 병원비나 손해 배상금을 받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번 폭행 사건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김병권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원장과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 등 유가족 4명은 공동상해와 업무방해 혐의, 김 의원은 공동폭행과 업무방해 혐의의 기소의견으로 10월 28일 서울남부지검에 송치됐다.

검찰은 12월 초 이 씨에게서 다시 진술을 받고 10일에는 유가족 조사를 마쳤다. 현재 사건 관련자 중에서는 김 의원의 소환만 남았다. 하지만 검찰은 “김 의원 소환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를 마무리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려면 해를 넘길 수밖에 없게 됐다.  
▼ 6월, 12월, 희비 갈린 제보자 ▼

유씨 시신 발견자 400만원 보상… 박춘봉 신고자는 5000만원 받아


2014년은 유난히 고액 신고포상금이 많았던 해다.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5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액을 내걸었고 경기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신고자는 신고전화를 한 지 열흘 만에 5000만 원을 받았다.

포상금을 받은 부동산중개업자 A 씨(51)는 “그 후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밥을 사라고 한다”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동네에는 ‘사건을 신고하라고 먼저 제안한 것은 같은 사무실의 부동산중개원인 B 씨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A 씨는 “B 씨는 내게 신고를 권한 적이 없는데도 ‘같이 일하는 사이에 포상금을 나눠 갖자’며 사무실 직원들을 선동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일하던 사무실을 나와 새로운 일터를 찾고 있다.

A 씨는 11일 112에 전화를 걸어 ‘계약금을 20만 원이나 걸고도 며칠째 연락이 없는 조선족이 있으니 토막살인과 연관성이 없는지 수사해 달라’고 신고했다. A 씨는 같은 날 오후 3시 반경 집주인과 월세방에 들렀다가 방 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목장갑과 검은 비닐봉지, 표백제(락스) 등을 발견하고 현장 사진을 찍어 오후에 추가로 신고했다. 알고 보니 조선족 ‘송 씨’는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박춘봉 씨(55·중국 국적)였다. 박 씨는 그날 오후 11시 반 경찰에 붙잡혔다.

매실밭에 누운 유병언 전 회장 시신을 처음 발견한 C 씨(77)는 신고포상금 5억 원의 125분의 1인 400여만 원을 받았다. 그것도 포상금이 아니라 시신과 수색 때문에 입은 손실보상금 명목이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이 전남 순천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최초 신고자인 C 씨가 5억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다. 전남지방경찰청 범인검거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는 9월 C 씨에게 포상금을 줄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C 씨는 신고 당시 “밭에 시체가 있으니 와 달라”고 신고했을 뿐 유 전 회장과 관련된 언급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도 알아보지 못해 일반 변사자로 처리해 놓고는 ‘유병언 백골’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상금을 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 7월, ‘고무통 살인’ 피해 아동 ▼

쓰레기 더미 속 8세 男兒… 위탁가정서 안정 찾는 중


“윗집에서 사내아이가 악을 쓰고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요.”

7월 29일 경찰에 걸려온 이 신고 전화가 시작이었다. 경찰은 경기 포천시 한 다세대주택 2층으로 출동했다. 방문을 열자 소름 끼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발 디딜 틈 없는 쓰레기들 사이로 A 군(8)이 혼자 울고 있었다. 방 한쪽에 있던 고무통 안에서는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올여름 전국을 경악하게 한 ‘포천 고무통 살인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날이었다.

신고한 지 사흘 만에 A 군의 엄마이자 사건 피의자인 이모 씨(50)가 체포됐다. 이 씨는 남편과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와 아동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A 군에게는 이부형(28)이 있었지만 동생을 거둘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스리랑카 국적의 A 군 아버지는 지난해 출국한 이후 아이를 찾지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가 발견된 지 5개월. A 군은 경기도의 한 위탁가정에 머물고 있다. A 군은 아동보호기관에 한 달간 머물다가 8월 27일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도 선정돼 생활비와 치료비 등 정부에서 한 달에 68만 원을 받고 있다. 가장 우려됐던 건강은 현재 양호하다. 이 씨가 냉장고에 먹을 것을 둬 영양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위탁가정에 온 이후로 치료를 받아 치아와 시력, 간질도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당시의 공포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다. 심리치료와 놀이치료가 병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A 군의 심리치료가 최대 10년 동안 지속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A 군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녀야 할 나이지만 정신지체 3급에 한글도 배우지 못한 터라 현재 1학년에 다니고 있다.  
▼ 8월, 루게릭 환자 돕기 ▼

‘얼음물샤워’ 기부 20억… 정기후원자도 3배 늘어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아이스버킷챌린지’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통한 기부는 승일희망재단과 한국ALS(루게릭병의 영어 약자)협회로 모아진다. 두 협회에 기부된 금액은 총 20억5000만 원(승일희망재단 11월, 한국ALS협회 12월 19일 기준). 승일희망재단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기부 금액은 10억 원이었다. 9월부터 11월까지 승일희망재단에 모인 금액은 3억여 원 수준으로 열풍이 불 당시보다는 못하지만 꾸준한 추세다. 지난달에도 8200여만 원이 모금됐다. 승일희망재단 관계자는 “열풍 이전보다 정기후원자가 3배가량 늘어난 것은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아이스버킷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1명이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3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루게릭병에는 이렇다 할 치료제도 없다. 미국에서 6월 시작된 아이스버킷챌린지는 가수 팀(본명 황영민·33)이 8월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리면서 한국으로 번졌다. 이후 채널A 뉴스톱10 박정훈 앵커와 박 앵커의 지목을 받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 이어졌고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비롯해 많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도 참여했다. 루게릭병 환자인 전 프로농구 코치 박승일 씨(43)도 아이스버킷챌린지에 동참해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아이스버킷챌린지 열풍은 유사한 방식의 ‘파생상품’도 만들어 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라이스버킷챌린지(쌀 30kg을 지게로 지거나 같은 무게를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행사)’, 9월 SNS를 중심으로 유행한 ‘감사릴레이(감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3명을 지목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황성호 기자
#사건#2014년#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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