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만한 인생?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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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촬영 마친 tvN ‘미생’ 김원석 PD-정윤정 작가

‘미생’의 김원석 PD(왼쪽)와 정윤정 작가는 “원작을 완전히 해체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같은 대사라도 다른 장면에서 사용하거나 원작에서는 장그래가 겪은 일을 장백기가 겪는 것으로 바꾸는 식이다. tvN 제공
‘미생’의 김원석 PD(왼쪽)와 정윤정 작가는 “원작을 완전히 해체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같은 대사라도 다른 장면에서 사용하거나 원작에서는 장그래가 겪은 일을 장백기가 겪는 것으로 바꾸는 식이다. tvN 제공
“‘미생’의 홍보 문구가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었지만 저희가 하려던 얘기는 반대였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김원석 PD)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엠큐브에서 만난 tvN 드라마 ‘미생’의 정윤정 작가는 무릎 위에 백과사전 두께의 A4용지 세 묶음을 올려놓았다. 미생을 쓰며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라고 했다. 김원석 PD는 “오늘 오전 6시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마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생은 20일 오후 20회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기획부터 시작해 1년 2개월 동안 미생에 매달렸다. 엠넷 뮤직드라마 ‘몬스타’(2013년)에서 호흡을 맞춘 뒤 두 번째 작업이다. 김 PD는 “정 작가는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며 “원작은 지적이고 철학적이지만 드라마는 코미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미생을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창작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덤볐다”며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는 장그래가 돼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유명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부담은 컸다. 어떤 드라마를 만들지 얘기하는 데 첫 한 달을 보냈고 한 달 반 이상 자료 조사에 매달렸다. 1회 대본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김 PD는 “1회 마지막 대사는 장그래가 울분을 간직한 채 독백하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 버려졌다’로 미리 정했다. 그런데 그 대사로 가기 위한 오징어젓갈 에피소드가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했다.

미생은 선과 악이 “49 대 51”(정 작가)로 섞인 평범한 인물들이 격렬한 감정 기복 없이 드라마를 끌어간다. 정 작가는 “원래 남녀 멜로에 약하다. 키스신이 제일 힘들다. 그 대신 전략적으로 ‘브로맨스’(남자 간의 우정)를 많이 넣었다”고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이 있잖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 역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이 있고요. 늘 혼자였던 장그래가 ‘우리 애’가 되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어요.”(김 PD)

“40대 남자 직장인이 술 마시고 택시 잡다가 넘어지는 모습, 큰 양복 안에 들어 있는 초라한 몸, 그럼에도 식판에 밥을 먹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어요. 사람들이 미생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연민을 느끼며 위로받았다고 생각합니다.”(정 작가)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미생#김원석#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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