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사교육 대책이 눈물겨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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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교육부가 17일 내놓은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에 대한 현장의 반응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교육 대책은 어이가 없고, 공교육 대책은 내용이 없다.”

눈에 띄는 항목이 없을뿐더러 그나마 새로 내놓은 학원비 경감 대책은 너무 황당하다는 지적이 있다. 일명 영어유치원이라고 하는 영유아 영어학원의 원어민 강사 채용을 금지하겠다는 교육부의 구상에 관련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영어유치원 강사인 친구는 “그렇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헛웃음을 쳤고,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후배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조기유학 가라는 말이에요?”라며 화를 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전국외국어교육협의회는 당장 성명을 통해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며 “영어유치원이 조기유학으로 인한 외화 유출과 기러기아빠 양산 같은 폐해를 줄이고 있는데 이 무슨 황당한 발상이냐”고 따졌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는 날로 커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아 공교육 시설이 부족해서 대체재로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택하는 이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라는 인식이 보편화됐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교육부도 이 정책이 무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유독 이 부분은 공론화 과정을 밟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리수인 줄 알면서 이런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매년 한두 번씩 ‘사교육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건국 이래 사교육이 줄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통계청 서류의 수치만 본다면 1인당 사교육비가 주춤한 시기도 있었으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사교육은 액수도, 종류도 늘어만 간다.

이를 되짚어 보면 정부의 사교육 대책으로는 결코 사교육을 줄일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교육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 뻔하다. 학벌이 미래를 보장하는 사회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의 성적표에 일희일비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원을 때려잡거나 EBS를 요리조리 바꿔보는 것뿐이다.

그러니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교육부가 내놓은 학원비 옥외표시제의 경우 이미 2007년 사교육 대책으로 발표됐던 내용이다. 방과후학교나 수업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은 사교육 대책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래서 오히려 ‘이건 진짜 미션 임파서블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해가 바뀌기 전에 한 번은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넘어갔어야 하는 교육부의 처지가 딱하게 여겨질 뿐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나, 점점 정보가 공개되고 개방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제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고, 부유세 도입 논의가 나오면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식이다. 정보와 국경을 차단하지 않는 이상 정부의 ‘정책 한계’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교육당국도 사교육 대책으로 사교육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무리한 대책을 짜내기보다는 정책 한계를 인정하고 공교육에 몰두하는 편이 사교육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사교육#교육부#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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