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만난 봉사활동 대학생 “금융계의 일꾼이 되고 싶어요”
눈 빛났지만 발걸음은 무거워
우리 청년들 꿈 키워주는건 기성세대와 지도자들의 의무
힘있는 사람들 막장드라마 대신 힘없는 이들 감동드라마 보고싶다
지구촌 최대 명절인 성탄절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성탄절의 전통은 4세기경 교황청이 자리한 로마에서 시작됐다. 매년 이맘때는 한 해를 반추하고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시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캐럴과 구세군 종소리는 ‘문건 파동’ ‘땅콩 회항’의 파열음에 묻혀 있다. 국내외 경제는 난기류를 만났고 국정운영 동력은 떨어진다.
유난히 이탈리아를 떠올린 한 해였다. “일본이 영국과 비슷하다면 한국은 이탈리아와 닮았다.” 30년 전 해외출장 중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미국 변호사의 얘기다. 일본과 영국은 섬나라고 한국과 이탈리아는 반도라는 공통점부터 유사점이 적지 않다. 새삼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을 뒤로하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은 2년여 전 침몰할 때 먼저 탈출한 이탈리아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선장과 같은 종신형 운명이다. 한 해를 풍미한 ‘관피아’나 ‘정피아’도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합성어다.
경제 규모 면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에 이어 동아시아 3위, 이탈리아는 독일 프랑스 다음으로 유로존 3위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26위로 밀려나고 이탈리아는 40위권으로 떨어져 주요 7개국(G7) 중 최하위다. 정치 금융 노동 부문의 평가가 바닥 수준이란 점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민주주의의 출발지이자 중세 금융업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의 퇴보는 정치 시스템의 비효율과 국가 리더십의 신뢰 상실에 기인한다.
책임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정치체제의 최대 피해 산업은 금융이다. 은행 중심의 금융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그만큼 정치와 정부의 개입 소지가 크다. 금융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나라는 금융선진국의 길을 가지만, 그러지 않으면 금융강국이나 진정한 경제대국의 꿈은 허망해진다.
유럽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 중 가장 빨리 일어선 아일랜드의 비결은 효율적인 구조개혁과 금융 인프라다. 반면 정치사회적 저항으로 경제개혁에 진전이 없는 이탈리아는 저성장 고착화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서 극복한 미국 영국 등이 보여주듯이 경기회복의 촉매제는 강력한 구조조정과 금융의 역동성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 일로다. 유로존 위기 재연 조짐과 중국 경제 감속 추세가 본격화하고 일본 아베노믹스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고 있다. 유가 폭락은 러시아 등 신흥국 부도 위험을 높이고 산업계 혼란과 시장 불안을 확산시킨다. 미국이 그중 낫지만 세계경제는 싱글 엔진으로 순항하기에는 너무 크다. 국내는 늘어나는 가계부채, 줄어드는 소비와 투자의 악순환으로 구조적 장기침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개혁을 통한 체질 강화와 함께 금융혁신의 돌파구가 시급하다. 핀테크(FinTech) 혁명의 패러다임 격변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1년간 5만 명의 일자리가 날아간 한국 금융의 경쟁력은 아프리카 수준으로 추락했다. 금융 경쟁력은 사람이다. 전문 역량이나 절차적 정합성이 없는 ‘정치인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경제의 심장’인 금융의 미래는 어둡다. 금융강국의 로드맵은 정책과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핵심이다. ‘빠른 길’을 찾기보다 ‘바른 길’로 꾸준히 가는 게 정답이다.
자본시장 발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견인해야 할 국민연금이 내년에 ‘자산 500조 원 시대’를 연다. 글로벌 운용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본부조직의 지방 이전과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정치논리를 떠나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라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2000만 가입자의 노후가 달린 문제다.
이달 초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을 만났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땀 흘리는 5000명 인턴 중 한 명이다. 앞으로 금융계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그 대학생의 눈길은 빛났지만 발길은 무거웠다. 청년들의 꿈을 키워줄 책임이 기성세대, 각계 지도자들에게 있다.
푸치니는 이탈리아가 낳은 오페라 작곡의 전설이다.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성장한 그는 일생 동안 ‘작은 사람들의 큰 드라마’를 썼다고 한다. 새해에는 힘 있는 사람들의 ‘막장 드라마’ 대신 힘없는 사람들의 ‘감동 드라마’를 보고 싶다. 가진 사람들의 일탈과 특권의식은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야 할 이 절기에 더더욱 고쳐야 할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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