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조선 왕들의 질병 기록 세밀하게 분석… “정조 死因은 독살 아닌 인삼처방 잘못”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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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이상곤 지음/440쪽·1만7000원/사이언스북스
‘왕의 한의학’을 쓴 이상곤 한의사

한의사인 저자는 “조선의 왕은 적이 쳐들어오면 놀라 우황청심환을 먹고 신하와 갈등이 생기면 화를 삭이기 위해 우황고를 먹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한의사인 저자는 “조선의 왕은 적이 쳐들어오면 놀라 우황청심환을 먹고 신하와 갈등이 생기면 화를 삭이기 위해 우황고를 먹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머리말 첫 줄에 적힌 ‘조선 왕의 몸은 역사보다 정직하다’란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의사인 저자는 2009년부터 5년간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각종 왕실 기록을 찾아 세종부터 고종까지 조선 왕들의 질병 기록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10일 저자에게 ‘왕의 몸’에 대해 물었다.

“왕의 몸에 대한 기록에는 당대 최고의 명의와 지식인이 제공하는 최상의 이론과 정보, 시대정신, 제도, 문화가 스며듭니다. 왕의 육체는 조선을 제대로 알게 하는 바로미터예요.”

시대별 사건, 역사의 변곡점도 왕의 몸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문종은 등짝에 30cm가 넘는 종기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사망했어요. 문종이 종기를 잘 치료했다면 후에 단종의 비극도 없었을 겁니다. 또 세조가 집권을 도운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면서 굳어진 ‘집권세력의 이익화’ 현상도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선조는 평생 소화불량, 편두통. 신경질환을 앓았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겪고 퇴계, 율곡 등 자신을 가르치려는 신하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선조의 병에는 조선 사대부 중심의 정치체계와 허약했던 국방체제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 다른 조선 왕들도 ‘종합병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소갈증(당뇨병), 안질, 임질, 풍습(관절병), 강직성 척추염, 전립샘 과민증 등을 앓았다.

“세종은 ‘한 가지 병이 나으면 또 다른 병이 생긴다’고 한탄했을 정도죠. 세종이 건강하지 못한 것 역시 조선 개국 정치사의 산물입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과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의 갈등. 큰아버지 정종, 원경왕후, 태종의 국상을 잇달아 치르면서 재위 초반부터 심신이 약해진 상태였어요.”

왕의 몸을 연구하면 기존 역사 연구를 보완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조 독살설.

“왕의 몸을 진단하고 병을 치료한 기록은 속일 수 없어요. 정조 처방 기록을 꼼꼼히 분석하면 정조의 죽음은 등에 난 종기와 적절치 못한 인삼 약재 처방에 따른 약화(藥禍) 사고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인삼은 정조의 체질과 극단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정조에게 인삼이 들어간 경옥고를 처방했습니다. 이게 혼수상태에 빠진 원인이라고 봅니다.”

산해진미를 먹는 왕들이 왜 평생 병을 달고 살았는지가 궁금했다.

“왕은 대장금이 만든 진수성찬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많은 왕들이 집권 스트레스 탓에 입맛이 없어서 자주 죽만 먹었어요. 선조는 무를 자주 먹었죠. 시원해서 마음의 화가 가라앉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더구나 성리학은 왕들에게 내성외왕(內聖外王), 즉 안으론 성인, 밖으로는 왕을 바랐죠. 금욕적인 식생활을 통해 수양하도록 했습니다. 효종이 ‘전복을 먹었다’고 했더니 송시열이 ‘음식을 찾는 것은 천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예요.”

저자는 영조의 예를 들며 현대인에게 건강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선 왕 중에서 유일하게 건강했던 왕이 영조예요. 체질적으로 차가운 몸을 보완하기 위해 전복, 새끼 꿩, 사슴 꼬리, 송이버섯 등을 찾아 먹었고 83세까지 장수했어요. 현대인들이 병원에 가도 진료 시간은 겨우 5분이잖아요. 24시간 내내 몸을 관찰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자기 체질을 파악해 적합한 음식을 먹는 등 스스로 건강을 돌봐야 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왕의 한의학#왕들의 질병 기록#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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