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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비영리단체 이노비 강태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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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비영리단체 이노비 강태욱 대표

이샘물 기자 입력 2014-12-13 03:00수정 2014-1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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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할머니에게… 소아병동 아이에게… ‘힐링 음악회’ 선물
강태욱 이노비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며 선진 문화를 배우고 재능을 키웠다. 그는 “이런 재능은 제가 잘나서 주어진 게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재능은 사회와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노비는 강 대표처럼 자신의 재능은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평택=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너무 신나면 일어나서 소리 지르셔도 돼요. 오늘은 마음껏 표현하세요. 아셨죠?”

10월 28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기지촌 할머니들을 돕는 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 건물에서 뮤지컬 배우 박영필 씨(32)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기지촌 할머니 약 30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네!”라고 외쳤다. 한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못 일어난다”고 하자 박 씨는 “그냥 앉아서 즐기셔도 된다”고 했다. 주위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박 씨와 함께 뮤지컬 배우 신혜지 씨(28·여), 고은선 씨(31·여)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아현 씨(30·여)는 피아노를, 박희준 씨(28)는 기타를 쳤다. 이들은 모두 소외계층을 위해 문화공연을 해주는 비영리단체 ‘이노비(EnoB)’ 소속 자원봉사자다. 이노비는 ‘변화를 이끄는 아름다운 다리’라는 뜻인 ‘이노베이션 브리지’의 줄임말.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내가 눈물이 되리/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너의 벗 되리라….”

‘여러분’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할머니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거 가수 윤복희 씨 노래지?” “맞다, 맞아.” 노래가 끝나자 청중 사이에서 “앙코르”가 쏟아져 나왔다.

이날 봉사자들이 준비한 노래는 총 10곡. 이노비 봉사자인 김기연 음악감독(36·여)이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 특별한 노래들을 골랐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봉사자들은 밥과 반찬을 날랐다. “저희 작년에도 왔었는데 기억나세요?” “그럼, 거의 다 생각나.” “우와∼.” “근데 길에서 보면 못 알아봐. 하하.”

함께 식사를 하던 강태욱 이노비 대표(43)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 단체를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자’는 취지로 사람들을 모았고 지금까지 400여 명의 예술가가 동참했다. 불과 8년 전에는 대학 동아리 수준의 작은 단체였지만 이제는 서울과 뉴욕에 사무실을 두고 연간 70회가량의 공연을 펼칠 정도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특별한 행복

강 대표가 처음부터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려 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부친인 강세윤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74)의 영향이 컸다. 강 대표는 고교를 졸업한 뒤 1993년 미국 뉴욕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집안 어른들이 “선진국에서 공부해야 더 멀리 볼 수 있다”며 유학을 권한 덕분이었다. 미국에선 의대 준비생들이 학부 때 화학이나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우선적으로 공부한다. 강 대표 역시 그런 생각으로 대학을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연구원으로 2년간 일하며 각종 실험에 참가했다. 국제학술지에 공동저자로 몇 차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앞선 1980년대 초 강 대표가 미시간대 의대 교환교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장애인 전용 주차 표지와 공간을 볼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이렇게 말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남을 돕는 건 돈이 아니고 마음 문제다. 봐라, 장애인 주차장을 만드는 데 특별한 돈이 드는 게 아니지만 이를 통해 사회는 크게 변할 수 있단다.”

강 대표의 아버지는 2년 반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매주 수요일이면 장애인복지관에 가서 무료 진료봉사를 했다. 시간이 빠듯해 저녁식사는 승용차에서 햄버거나 치킨으로 해결했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강 대표는 “평생 공익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고, 그러면서 행복해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노비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10월 28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햇살사회복지회에서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 공연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노래를 선물했다. 평택=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소외된 이들에게 음악 선물

강 대표도 아버지처럼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 뉴욕대 재학 시절, 방학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대 지적장애인 두 명에게 사회 적응 훈련을 시키는 역할이었다. 이들과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장애인들은 덧셈 뺄셈을 하지 못해 영화관에서 스스로 표도 사지 못할 정도였다. 힘들게 영화관에 들어서긴 했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결국 15분 만에 영화관을 나와야 했다.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들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즈음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사연을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 예정인데 반주자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만 환자들은 외롭게 병동을 지켜야 했다. 이들을 위해 의사들이 직접 기획한 콘서트였다. 강 대표는 반주자를 소개해주고 공연 현장을 찾았다. 평소 지친 표정으로 병상을 지키던 아이들이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뛰놀고 있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때 강 대표는 확신했다. ‘그동안 내가 간절히 찾던,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라고….

강 대표는 결국 의대 진학의 꿈을 접었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컬럼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에 등록해 비정부기구(NGO) 운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1년에 2, 3번씩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을 모아 소외계층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강 대표는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려면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2006년 10월 29일, ‘이노비’라는 단체를 만들어 뉴욕 주에 비영리단체 등록을 했다. 이노비의 사명은 ‘우리의 재능은 가장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공유돼야 한다’라고 정했다.

단체를 설립한 뒤 첫 공연은 2006년 11월 뉴욕의 공연장인 ‘오픈센터’에서 열렸다. 지적장애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대상이었다. 당초 관객 60여 명을 예상하고 기획했지만 240여 명이 몰렸다. 8명의 예술가들이 재능 기부로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다. 이때 갑자기 장애 어린이들과 가족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 연주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도 마음껏 표현하며 예술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장애인시설, 요양원 등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적인 이유로 오랜 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곳에 모았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40분. 음악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관객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제격이었다.

강 대표는 비영리단체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싶었다. 대학원 졸업 후 뉴욕 퀸스YWCA에서 사무행정 일을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부사무총장으로 단체 운영을 총괄하게 됐다.

그러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공연을 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이노비에 ‘올인’하기 위해 2011년 사표를 냈다.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뉴욕 맨해튼에 10m²짜리 사무실을 얻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봉사자가 많지 않아 아내와 단둘이 공연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콘서트를 열다 보니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 입소문이 났다. 봉사자와 후원자도 하나둘씩 늘었고, 사무실 직원도 생겼다. 그리고 2012년 서울에 사무실을 열었다.

작은 공연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


이노비의 공연은 힘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제공했다. 올해 2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해 공연할 때였다. 한 할머니가 빨간색 외출 모자와 재킷을 입은 채 병실 침대에 실려 나왔다. “예쁜 옷 입으셨네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음악회인데 당연히 잘 입고 나와야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의 손을 잡은 채 공연을 관람했다.

작은 공연이라도 누군가에겐 큰 선물이었다. 6월 뉴욕 갈보리병원에서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연 공연에서는 한 여성 환자가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말했다. “하루 전날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겼어요. 절망뿐이었는데 공연을 통해 기쁨과 희망을 얻었어요.”

음악은 때론 사람들의 아픔을 멎게 했다. 봉사자들이 10월 미국 컬럼비아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디즈니 주제곡 등을 들려주며 공연할 때였다. 병원은 중증환자들을 위해 입원실 TV로 공연을 생중계했다. 환자의 부모가 말했다. “아이가 수술 후 아프다고 계속 칭얼대며 힘들어했어요. 놀랍게도 공연을 보는 동안은 아프다고 단 한마디도 안 하더군요.”

이노비의 공연은 매번 무료로 진행된다. 일부 실비는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네이버 해피빈으로 소액 후원금이 모이고, 정인욱 복지재단, 의당기념사업회 등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노비는 매년 두 번씩 뉴욕에서 후원의밤 행사를 열어 콘서트 티켓 판매와 후원금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한다. 뉴욕에 있는 파슨스스쿨, 프랫 인스티튜트 등 미술학교 학생들이 재능 기부로 만든 미술품을 판매해 이노비에 전액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컬럼비아대 학부생들로 구성된 8인조 밴드는 공연을 열고 수익금 전액을 이노비에 기부하기도 했다.

강 대표의 부모와 아내도 든든한 후원군이다. 사촌 형도 설립 초기에 “귀한 일을 시작했다”며 100만 원을 보내줬다. 이노비를 시작한 첫해에는 후원금의 95%가 강 대표 친인척들의 몫이었지만, 현재는 후원금의 80% 정도가 외부 후원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노비의 꿈은 조직을 확장하는 것도, 후원금 자체를 많이 모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외계층과 재능 기부자들 사이에 더 많은 다리를 놓아주는 게 목표다. 강 대표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담을 허물고, 서로 다가가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 그게 이노비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이노비#힐링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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