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정윤회 문건’ 수사, 게이트로 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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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작심한 듯 ‘정윤회 문건’을 근거 없는 것이라고 다소 길게 언급했다. 의외였다. 대통령이 수사 중인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당장 야권에선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음 날인 2일 조응천 전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 씨가 올 4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을 폭로했다. 조 전 비서관은 “문건은 60% 이상 사실”이라는 주장도 했다.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찬까지 겸해 4시간 가깝게 통일준비위원회를 주재했다. 박 대통령이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행사 도중 여러 차례 농담도 건네며 유쾌한 표정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정 씨는 문제의 문건이 보도된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과 30일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에게 전화를 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이 비서관에게는 “나도 가만히 안 있겠다. 나도 이제 나서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과 정 씨의 통보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인가.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 행사 중 줄곧 밝은 표정을 지은 것은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후련함의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현 정국을 “불길하다”고 진단했다. 정 씨와 조 전 비서관이 장외에서 난타전을 벌이며 의혹을 키우는 상황이 어디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배후에 있던 비선 실세의 머리카락만 보이던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옷소매가 드러나고 결국에는 민낯까지 공개되는 순간이 올 것 같다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의 폭로로 정 씨가 이재만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서막에 불과할지 모른다.

한 친박계 인사는 “정 씨가 뒤에서 역할을 한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고 전했다. 그는 정 씨의 최근 언행에 뭔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는 말도 꺼냈다. “작심한 듯 (청와대를 향해) 뭔가 카드를 꺼내 보인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일부 대기업이 정 씨를 챙겼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까지 나돈다.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당초 정윤회 문건 수사를 형사부에 맡겨 통상적으로 처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이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에 전해진 직후 명예훼손 수사를 맡는 형사1부 외에 특수2부를 투입해 문건 유출 수사를 맡겼다. 검찰은 문건 유출 수사를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의 결론이 너무 빤해 보인다는 점이다. 명예훼손 수사에서 정 씨가 ‘3인방 비서관’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건 유출에 연루된 경찰관 몇 명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 사건이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수사가 생물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 수사가 일단 진행되면 수사 외적인 요인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당장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면 수사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야당은 ‘정윤회 게이트’라는 공세를 펴며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는 “특검으로 가는 큰 길이 나 있다”고 장담했다. 내년 어느 시점에 ‘쌍끌이 특검(정윤회 특검과 세월호 특검)’이 진행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는 말이 들어맞을 것인가.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정윤회#게이트#문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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