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추행 서울대 교수 첫 구속, 대학도 정신차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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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인턴과 서울대 여학생 4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수리과학부 강석진 교수가 어제 구속됐다. 현직 서울대 교수가 상습강제추행으로 구속되기는 처음이어서 대학 사회에 주는 충격은 크다. 일부 교수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행하는 ‘성(性) 갑질’과, 이를 유야무야 덮어 온 대학가의 관행을 끊어 버리겠다는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강 교수는 수학 교육과 관련해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써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수학자다. 그래서 강 교수가 8월 세계수학자대회 기간 중 한강 둔치에서 인턴을 성추행했을 때만 해도 ‘석학의 일탈’에 안타까워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나도 그 교수에게 당했다”는 여학생들의 고발이 잇따르면서 강 교수의 성추행이 상습적이며 반복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서울대의 어이없는 대처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지난 10년간 강 교수에게 성추행당한 대학생과 대학원생 22명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했는데도 대학 측은 강 교수가 지난달 말 사표를 내자 면직 처리 방침을 밝혔다. 면직은 해임이나 파면과 달리 퇴직금이나 연금 수령, 그리고 재취업에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 서울대가 피해 학생들의 고통보다는 교수의 체면과 대학의 위신을 중시해 면죄부부터 주려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서울대 출신 고위직 인사들이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성낙인 총장은 강 교수 구속과 별도로 학생들의 성추행 피해가 더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

교수들이 논문 심사나 취업 알선 등을 미끼로 학생에게 ‘슈퍼갑’으로 행세해 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대학원생 조사 결과 교수로부터 성추행 성희롱 언어폭력 등을 당해 본 사람이 45.5%나 됐다. 교수로부터 학점과 취업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말을 못했던 대학원생들은 급기야 지난달 부당한 일을 거부할 권리를 담은 ‘권리장전’까지 선언했다.

세상이 바뀌고 학생들이 달라졌는데도 서울대는 교수를 비호하는 태도였으니 교수에 의한 성추행은 결국 대학이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앙대의 한 교수는 성추행으로 사표를 제출하고도 “대체 교수가 없다”는 이유로 강의를 계속하기도 했다. 강 교수의 구속은 권위주의와 낡은 관행에 기대어 제자를 괴롭혀 온 교수들에게 ‘살아 있는 경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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