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미생’ 출판사의 특별판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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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문화부
김윤종·문화부
“책을 조금 바꿔서라도 가격을 내리면 소비자에게는 이득 아닙니까? 오히려 권장해야….”

“기존 책과 똑같은데 크기만 조금 줄인 뒤 새 책이라고 대폭 할인 판매를 한다면 문제라고 봅니다.”

27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내 한 출판사 회의실. 21일 새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자율도서정가협의회가 열렸다. 도서 가격 안정화와 정가제 위반 단속을 위해 출판, 유통, 소비자단체가 머리를 맞댄 자리다.

이날 회의에선 베스트셀러 만화 ‘미생’ 특별보급판의 정가제 위반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최근 ‘미생’ 판매부수가 200만 부를 넘기자 출판사인 위즈덤하우스는 “감사의 의미로 특별보급판을 28일부터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특별보급판을 과연 새 책으로 볼 수 있냐는 것. 9권 세트인 특별보급판 가격은 7만2000원으로 책정됐다. 새 정가제의 최대 할인 폭(15%)을 적용하면 6만1200원에 살 수 있다. 기존 세트는 9만9000원이지만 새 정가제 시행 전에 40% 할인된 가격(5만9000원)에 판매했다. 특별보급판과 기존 세트 가격은 거의 같다. 특별보급판은 기존 세트에서 박스 포장을 빼고 책 여백 부분을 잘라내 크기를 줄였을 뿐 종이, 디자인 등 책 자체는 차이가 없다.

출판계 일각에선 “사실상 똑같은 책인데 15%로 할인 폭을 제한한 새 정가제를 피해 정가를 낮춰 예전 40% 할인가에 맞춘 꼼수 판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위즈덤하우스는 “크기도 다르고 케이스를 뺐기 때문에 엄연히 새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특별보급판에 기존 세트와 다른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부여해 새 상품으로 분류한 만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정가제 제정 취지에서 본다면 안일한 접근이다. 문고본처럼 새로운 판형으로 만드는 대신 외관만 살짝 바꿔 책값을 내리는 방식이 만연되면 또다시 예전처럼 출혈적인 할인 경쟁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 일주일 만에 불거진 특별보급판 논란은 시작일 뿐이다. ‘장난감 끼워 팔기’ 같은 또 다른 꼼수 우려도 나온다.

새 정가제는 왜곡된 출판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출판계가 원해서 마련된 제도다. 여전히 구멍이 많고 갈 길도 멀지만 출판계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애초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미생의 한 대목이다.

김윤종·문화부 zozo@donga.com
#도서정가제#미생#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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