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6년만에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 펴낸 농부시인 김명국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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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어도 서로 품고 사는 情은 매한가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김명국 시인은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에서 아내의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보여줬다. 김명국 시인 제공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김명국 시인은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에서 아내의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보여줬다. 김명국 시인 제공
‘찌는 듯한 더위, 비자까지 받고 가서/면(面) 이발관에서 머리도 한번 깎고/한 달을 살다 왔다/죽는 줄 알았다.’(‘눌려서 떡이 된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에서)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명국 시인(42)이 16년 만에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실천문학사)을 냈다. 시집에는 한국 농촌 사람들의 애환과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방문한 베트남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북 고창 토박이인 시인은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면서 어머니, 베트남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베트남 처가에 갈 때 꼭 시집을 들고 가고 싶습니다. 한국 사위가 시인인 줄 알고 계시는데, 비록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하지만 사위를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어요.”

김 시인은 26세에 등단했지만 “글이 생존에 보탬이 안 됐다. 실력도 노력도 부족했다”며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2007년 같은 마을에 살던 베트남 이주 여성의 소개로 지금 아내와 결혼하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2009년 베트남 처가를 처음 방문할 땐 두꺼운 대학 노트 한 권을 들고 갔다. “국제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재 내 모습이니까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시가 열심히 써졌어요. 베트남에 머문 한 달 동안 노트 가득 시를 썼습니다.”

김 시인은 처음 베트남 처가 식구를 만났을 땐 “무슨 돈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시무룩해져서/어떤 때는 일 년 치 생활비를 미리 갖다 주러 온 기분밖에 들지 않는 곳이다”(‘베트남 처갓집 방문’)라며 어색해했다. 밥을 먹을 때도 “먹는 것도 다르고 식성도 달라 상 두 개씩 놓고 따로 먹는다”(‘밥상’)고 거리감을 드러냈다.

그 후 2년마다 처가를 방문하면서 시인은 조상에게 제사를 모시고, 오리를 잡아 사위를 대접하고, 집 안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외손자 사진을 걸어두는 모습을 보며 사람 사는 곳 같았던 과거 한국 농촌을 추억한다.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게 여기나 저기나 매한가지/그렇게 서로들 서로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뿐”(‘집 걱정’)이라며 처가 식구를 품는다.

시인은 묵은 김치로 능숙하게 찌개를 끓여내고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아내에 대한 시도 썼다. 시에 대한 아내의 반응을 물었더니 “아기 엄마는 시 쓰지 말고 돈이나 벌자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며 “그래도 먼 나라로 시집와서 잘 적응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베트남 처갓집 방문#농부시인#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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