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 결제정보 차곡차곡… 소비패턴 분석해 최적카드 추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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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금융혁명이 온다]<4>핀테크 혁명에 활기 불어넣는 국내 스타트업들

《 “고객님 카드 결제 정보를 분석해 보니 택시비를 많이 쓰시는군요. 교통비를 10% 할인해주는 카드가 있는데 한번 써보실래요?”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애플리케이션(앱)에 자신의 신용카드 결제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면 이를 토대로 소비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신용카드를 추천해준다. 이 서비스는 공짜로 제공된다. 국내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레이니스트’가 다음 달 내놓을 ‘뱅크샐러드’ 모바일 앱 서비스의 내용이다. 레이니스트는 올해 7월부터 PC 버전의 ‘뱅크샐러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PC 버전은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소비 패턴을 입력해야 알맞은 신용카드를 추천해준다. 모바일 버전은 소비 패턴을 입력할 필요가 없다. 최근 확산 일로에 있는 핀테크 혁명의 선봉에는 이처럼 다양한 금융 관련 서비스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이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하지만 뒤늦게 핀테크 혁명에 뛰어든 만큼 이 분야 국내 기업들은 영국,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 비해서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

○ 아직은 척박한 현실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 자체적으로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금융회사에 이런 기술을 제공해야 금융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높아지고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하지만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처한 현실은 척박하다.

국내에서 금융 관련 서비스를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은 어림잡아 10∼20곳. 핀테크의 범주를 넓혀 잡거나, 기본적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초보 단계의 기업까지 합치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최소 수백 개의 핀테크 강소(强小) 기업이 활약하고 있는 영국, 미국에 비해 수가 턱없이 모자란 게 현실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좋은 서비스를 개발해도 알릴 기회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청중 앞에서 자사 상품을 홍보하고 투자자의 질문이나 조언을 받는 자리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손에 꼽을 정도다.

선진국은 다르다. 영국, 미국에는 투자자들 앞에서 이들이 기업 홍보를 할 수 있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있고, ‘싹이 보이는’ 기업들을 꼽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금융사, 창업투자사도 즐비하다. 최근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은 세계 300여 개 기업의 신청을 받아 이 중 11개 핀테크 기업을 선정해 자금과 용지 지원에 나섰다. 이 은행은 특히 간부들을 각 기업의 ‘전담 멘토’로 배치해 경영 조언을 전담하게 할 정도로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에 열정적이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이나리 센터장은 “한국의 은행들 역시 스스로의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라도 정보기술(IT) 업계와 협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봉쇄돼 있다는 점도 이들을 ‘고립된 섬’처럼 만들고 있다. 현행법 규제로 인해 국내 벤처캐피털은 금융업에 투자할 수 없다. 실제 핀테크 기업 ‘비바리퍼블리카’는 국내에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없어 외국 투자자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성장하더라도 수익의 상당 부분이 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금융권의 폐쇄적인 문화도 핀테크 스타트업을 서럽게 한다. 스타트업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은행, 카드사 등 기존 금융회사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은 금융 당국의 보호와 규제 탓에 새로운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소극적이다. 벤처기업 육성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사업 아이디어 발굴에 필요한 고객 정보들을 쥐고 공유하지 않는 문화도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 “기술력 있는 기업 발굴 여건 조성해야”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은 나름의 혁신 노력을 통해 금융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NFC는 스마트폰에 적용된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이용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했다. NFC 간편결제는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대면 결제가 되는 것처럼 모바일 쇼핑을 할 때 자신의 스마트폰 뒷면에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카드를 갖다 대면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공인인증서나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결제할 수 있어 편리한 데다 개인정보를 저장하지 않아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해킹을 당해도 안전하다. 다만 한국NFC는 특허를 받고 올 3월 창업을 했는데도 아직 금융 당국의 보안성 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원화-비트코인 거래소를 차린 ‘코빗(korbit)’도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다. 이미 해외 투자자 등으로부터 30억 원을 유치했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다. 코빗 김진화 이사는 “비트코인은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고 가맹점 수수료는 1% 미만으로 저렴하다”며 “국내 대형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 산업의 선진화와 벤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활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제대로 구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핀테크 창업 기업이 많아져야 금융 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만큼 금융권이 중소업체들을 발굴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수수료 줄이고 대출심사 몇분만에 뚝딱… 英-美선 10여년전부터 ‘핀테크’ 일반화 ▼

기존 금융회사 허점 파고들어 신개념 아이템으로 고속 성장


한국에서는 ‘핀테크’란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반화된 개념이다. 특히 인터넷 전문은행 등 핀테크의 대표적인 업종들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생겨났다. 이후 해외 핀테크 기업들은 기존 금융회사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신개념 금융 서비스를 개발해 입지를 굳히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은행 심플(Simple)은 금융 소비자들이 기존 금융회사에 갖는 불만을 사업 아이템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다. 미국에선 은행 계좌(checking account)의 잔액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수십 달러의 ‘초과한도 인출 수수료’가 부과되지만 심플은 이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또 계좌 관리 비용 명목으로 다달이 나가는 수수료가 없고 전국 5만여 개에 이르는 자동현금입출금기(ATM)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수수료가 은행들의 주된 수입원이지만 과도한 액수 때문에 고객들의 불만이 컸다.

미국의 소액대출업체 온덱(OnDeck)도 혁신을 이룬 핀테크 기업이다. 오프라인 지점 없이 온라인 심사를 통해 주로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소규모 대출을 해준다. 컴퓨터가 대출 심사를 해 몇 분밖에 걸리지 않고 돈도 다음 날 바로 통장에 입금된다. 대출 관리 등에 허점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출 부실 확률이 5%도 채 안 된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이는 온덱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온라인 대출 심사 프로그램 덕분이다. 대출을 신청한 사업자의 금융거래 내용과 현금 흐름, 그리고 해당 기업, 음식점 등에 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평가나 인터넷 댓글까지 빠르게 분석해 신용도를 산출해내는 기법이다. 2006년 설립된 이 기업의 대출액은 올해 초에 이미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신용카드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핀테크 기업으로는 빌가드(Billguard)가 있다. 고객 스마트폰의 위치를 추적해 카드가 잘못 결제되거나 부정 사용된 징후가 있으면 고객에게 바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 특별취재팀 >

팀장=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팀원=유재동 정임수 김재영 신민기 송충현 박민우 경제부 기자
#핀테크#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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