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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납북 피해자의 상징’ 메구미는…1977년 13세때 하굣길에 北으로 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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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납북 피해자의 상징’ 메구미는…1977년 13세때 하굣길에 北으로 끌려가

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4-11-07 03:00수정 2014-11-0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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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메구미, 약물 과다투여 사망]대남 공작부서 배치… 납북 한국인과 결혼
1977년 11월 15일 일본 니가타(新潟) 현 니가타 시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요코타 메구미(橫田惠·당시 13세)는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녁이 돼도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딸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부모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나섰지만 딸의 행방은 끝내 찾지 못했다.

메구미가 북한 공작선에 실려 북으로 끌려간 사실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97년 북한 공작원 안명진 씨가 알렸다. 북한에서 대남 공작부서에 배치된 메구미는 김철준과 결혼했다. 김철준의 본명은 1978년 전북 군산시 선유도에서 실종된 고교생 김영남(당시 16세)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두 사람 사이에 김혜경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2002년 9월 17일 북한 평양 백화원초대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북한이 메구미를 납치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메구미를 포함해 8명의 납치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부모인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81) 씨와 어머니 사키에(早紀江·78) 씨의 충격은 컸다. 딸의 사망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않았다. 북한이 딸을 돌려보내기 껄끄러워 죽었다고 둘러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북한이 2004년 11월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에 보냈지만 유전자(DNA) 검사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는 ‘딸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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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미의 부모는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딸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2002년 이후 월평균 10회 이상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메구미가 가족과 함께 보낸 13년’이란 제목의 전국 순회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사진전을 보러 온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에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납북 피해자’라고 하면 메구미를 자동으로 떠올린다. 그가 납북 피해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올해 3월 몽골 울란바토르. 메구미의 부모는 처음으로 ‘딸의 딸’인 김혜경 씨를 만났다. 딸이 13세에 실종됐고 그 후 40년 가까이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27세인 외손녀를 만난 것이다. 김 씨는 “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메구미의 부모는 믿을 수 없었다. 이들은 메구미 묘를 보러 오라는 북한의 초청을 거부하고 있다. 방북하면 ‘메구미가 자살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납북 일본인#요코타 메구미 사망#일본인 납북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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