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87>‘반반’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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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가 오랜만에 만났다. 예전 직장의 선후배 사이.

후배의 표정이 불안해 보였다. 뭔가를 토로할 듯하더니 이내 웃음을 머금고는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선배는 맞장구를 쳐주며 후배가 본론을 꺼내기를 기다려 봤지만 한참이 지나도 다른 사람 소식만 이어질 뿐이었다.

어색한 시간을 함께 보낸 후배가 선배 눈치를 살피다가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데 이 집 커피는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모르겠네요. 비싸기만 하고.” 정체불명의 불안과 두려움을 분노로 바꿔 애꿎은 커피에 전가한 것이다.

후배의 용건은 나중에야 드러났다. 남편이 ‘딴짓’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슬픔,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선배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주 앉자, 그 얘기는 시작할 수가 없었다.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반, 힘든 처지를 간파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

동창 모임에서 만난 미혼 여성들 간에 ‘배틀(자랑 경쟁)’이 벌어졌다. 딱히 내세울 게 없는 한 여성이 오버를 하고 말았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거짓말을 하고 만 것. 친구들의 질문 공세에 아차 싶었지만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적지 않은 여성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속내를 털어놓을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내를 읽힐까봐 상대를 슬며시 밀쳐낸다. 때로는 엉뚱한 국면으로 자신을 좌충우돌 내몰기도 한다. 거짓말을 했던 여성이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물었다. “왜? 벌써 가려고?” 그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니. 화장실 가려고.”

역시 반반이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반, 그래도 남아 있어야 친구들에게 떳떳할 것만 같은 마음이 반.

어쩌면 반반보다 복잡할 수도 있다. 우월감이나 죄책감 외에 실망, 슬픔 같은 감정들이 흔들어 놓은 스노볼처럼 부옇게 뒤섞이는 바람에 스스로도 종잡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여성이란 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난해한 생명체인 셈이다.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 대릴 샤프는 소설 구성으로 쓴 ‘융, 중년을 말하다’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자기 탐색 과정에서 나온다”며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꺼이 무언가부터 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반반의 마음에 혼란스러운 여성들이 꼭 해야 할 첫 번째가 ‘연락 끊고 혼자 있어보기’ 아닐까 싶다. 하루 24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남들과 연결되는 대신에 가장 멀어진 게 바로 자기 마음이니까 말이다.

한상복 작가
#반반#속마음#자랑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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