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동생 김진근에게 듣는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 지극했던 누나 김진아의 삶

  • 우먼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8일 0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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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가 지난 8월 20일 미국 하와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경피증 후유증에 의한 암. 남동생인 배우 김진근에게 그의 힘겨웠던 투병 생활, 남겨진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서구적인 외모로 1980년대 영화계를 풍미했던 김진아가 향년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한 아침 방송을 통해 미국 하와이에서의 행복한 일상을 공개했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치병을 앓아왔다. 과거 방송에서도 “어느 날부터 몸이 너무 아프고 붓기 시작해 검사를 했더니 면역력이 거의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건강한 몸으로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 바 있다. 그로부터 4년 뒤 결국 김진아는 하와이 자택에서 남편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연인지 몰라도, 미국에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평소 자신의 유해를 뿌려달라고 부탁했던 집 앞 바닷가에 무지개가 세 번이나 떴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던 고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0년 미국인 사업가 케빈 오제이 씨와 결혼한 김진아는 200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생후 11개월 된 매튜를 공개 입양한 이후 오랫동안 성가정입양원을 다니며 갓난아기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 역시 평소 그가 보여준 남다른 봉사 정신과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다. 김진아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많은 선물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누려야 한다고 믿었기에, 입양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매튜(마태오)라는 이름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아이를 입양하고 한동안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입양 후 6개월 내에 친부모 측에서 입양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아이를 돌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일 없이 비로소 매튜를 온전한 자신의 아들로 삼게 된 김진아는 인터뷰 내내 행복한 표정으로 매튜와의 운명 같은 사랑을 쏟아놓았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이틀 뒤인 9월 12일, 김진아의 동생인 배우 김진근(44)을 만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고인의 투병 과정과 마지막 삶의 기록을 들었다. 김진근은 영화배우 김진규·김보애 부부의 아들로 김진아를 포함해 위로 누나가 셋이다. 그의 이모부는 이덕화다.
고 김진아의 동생 김진근 씨.
고 김진아의 동생 김진근 씨.

두 달 동안 하와이에서 누나 곁 지켜
2009년 동료 탤런트 정애연과 결혼한 김진근은 김진아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아내, 다섯 살배기 아들과 함께 하와이로 건너가 누나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다. 미국에서 장례를 마친 뒤 한국에서 추모식 형태의 두 번째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집안의 대표로 손님을 맞고 모든 일 처리를 도맡아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인지 그의 얼굴은 다소 수척해 보였다.
“가족들의 슬픔이 크지만 매형과 매튜만큼이야 하겠어요. 그동안 장례식이며 이런저런 일 처리로 제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매형이 다시 하와이로 누나 유해를 모셔가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나요. 아직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세요. 특히 잠깐 한국에 들어와 계실 때 누나가 운명을 달리한 바람에 임종을 지키지 못하셨거든요. 한편으로는 누나가 그걸 더 원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부모 앞에 두고 먼저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 달 동안 고모를 옆에서 지켜본 제 아들도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는 ‘고모는 천사가 돼서 하늘에 있으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하고 위로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빨리 기운을 차리시길 바랄 뿐이에요.”
어머니에게 둘째 딸 김진아는 아들처럼 든든한 존재였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 후에도 김진아는 두 분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드리기 위해 무던히 애썼으며 집안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앞장서서 해결했다고 한다. 김진근은 “누나는 가족에게 큰 나무와 같았다. 우리는 누나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편히 쉴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속으로 많이 힘들고 아팠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은 김진아가 경피증(피부경화증으로도 불리며 피부가 굳어 탄력이 없어지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김진아가 2년 전 하와이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병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고. 그 이후에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운동에 매진하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은 건강이 좋아질 거란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9월 경피증의 후유증으로 온몸에 종양이 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10회에 걸쳐 항암 치료도 받았지만 면역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오래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6월에 하와이에 도착하자 매형이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고요. 누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요. 병원에 누워 있는 누나를 봤는데 넉 달 전에 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어요. 진통제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데도 저를 보고 애써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때 누나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누나한테 ‘아무 일도 아니니까 우리 반드시 이겨내자’ 하고 얘기했지만 그때부터 가족들은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누나도 마찬가지고요.”
김진아의 외삼촌인 이덕화가 고인의 빈소를 찾아 남편 케빈 오제이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진아의 외삼촌인 이덕화가 고인의 빈소를 찾아 남편 케빈 오제이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누나 돌본 매형에게 고마운 마음
그 사이 김진아의 남편은 아픈 아내를 정성껏 돌보며 암 환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임종에 이르는지에 대해 세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결국 환자가 병원에 있는 것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아내의 침대 옆에 산소 호흡기를 설치하고 실내에서도 휠체어를 사용하기 쉽도록 하는 등 집 전체를 호스피스 병동처럼 꾸몄다. 이런 그의 배려 덕분에 고인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가족들 사이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남은 가족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매형한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두 달 동안 매형이 누나한테 하는 걸 보면서 반성도 많이 했어요. ‘남자가 여자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나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때론 약한 모습도 보였지만 누나 앞에서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매우 의연하고 강한 모습을 보였어요. 무엇보다 누나를 대하는 태도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다정했어요. 한편 그 둘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까 누나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 현실이 더욱 원망스럽게 다가오더라고요. 매형도 술을 한잔 마시면 ‘결혼해서 10년 넘게 일에 미쳐 살다가 이제야 둘이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많이 했어요.”
하와이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서로에게 남겨진 시간이 이렇게 짧은 줄은 아무도 몰랐다. 특히 아들 매튜와의 시간은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1분 1초를 아까워했다고 한다. 병상에서도 김진아의 걱정은 늘 매튜였다.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휠체어에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아이의 교복을 사러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외출이 됐다. 김진근은 “그날 누나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진근아 너무 힘들어. 그런데 엄마는 강하다’ 하면서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매튜의 슬픔 역시 쉬 가늠하기 힘들다.
“누나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매튜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엄마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엄마, 조금만 더 제 곁에 있어줄 수 없나요?’ 하면서 엉엉 울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정말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누나는 기가 막힌 듯 눈물도 흘리지 않고 헛웃음을 지으며 ‘우리 매튜 어떡하니’란 말만 반복했죠. 그때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누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저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죠. 누나는 늘 저한테 매튜와 매형을 부탁한다고 했어요.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두 사람만 두지 말고 한두 달이라도 하와이에서 함께 지내달라고 했었죠. 그게 누나의 마지막 유언이었던 것 같아요.”
김진아는 결국 자택에서 남편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았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자 오제이 씨는 김진아의 머리를 매만지며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귀에 입을 대고 끊임없이 속삭였다고 한다. 김진아도 남편의 얘기에 때때로 힙겹게 “응, 응” 하며 대답했다고. 숨이 멎자 고인의 얼굴은 유리알처럼 말개지면서 표정 또한 평온함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누나는 마지막까지도 아름다움과 품위를 잃지 않았어요. 누나의 지난 삶 또한 그렇고요. 결혼 전부터 오랫동안 호스피스로 봉사활동을 해왔고 매튜를 얻고부터는 입양 관련 봉사활동에도 앞장섰어요. 남편과 아이에게는 둘도 없이 훌륭한 아내이자 엄마였고요. 누나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래, 잘했어. 후회 없어’라고 말하더군요. 죽는 순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 면에서 누나는 분명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믿어요.”
남편 내조는 물론 가슴으로 낳은 아들 매튜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김진아. 남겨진 가족에게도 그녀의 체취와 사랑이 오랫동안 머물길 기원한다.
남편 내조는 물론 가슴으로 낳은 아들 매튜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김진아. 남겨진 가족에게도 그녀의 체취와 사랑이 오랫동안 머물길 기원한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현재 오제이 씨와 매튜는 하와이에서 조금은 낯선 일상을 맞고 있다. 김진근은 누나의 부탁대로 같이 하와이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우선 우리끼리 부딪쳐보겠다”는 매형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대신 날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는데, 요즘 오제이 씨는 매튜를 위한 한국 음식을 만들려고 고군분투 중이라고 한다. 10대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김진근은 평소 매형과 생각이 잘 맞고 얘기도 잘 통한다고 한다. 오제이 씨 역시 그를 친동생처럼 아꼈다고. 그가 정애연과 결혼할 때도 경제적으로 힘들어 교회에서 반지만 주고받으며 언약식을 올리자 “그래도 신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야 한다”며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누나들과 제가 순차적으로 매형과 매튜를 만나러 갈 생각이에요. 매형이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가 남남이 되는 것이다. 보통 이럴 경우 남이 되고 말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요.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매튜는 영원히 제 조카고 매형 역시 끝까지 제 매형이에요.”
하와이 집에는 김진아의 유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은 매튜에게도, 오제이 씨에게도 고인의 체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인의 유해 역시 아직 뿌려지지 않았다. 1주년 추모식 날 온 가족이 모여 고인이 생전에 부탁했던 집 앞 바닷가에 뿌리기로 했다고 한다. 김진근은 자신이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고인의 의미 있던 삶을 다시 한 번 알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고인과 관련된 마지막 추억을 안겨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터뷰에 응하기 전 매형에게 먼저 승낙을 구했어요. 역시나 흔쾌히 좋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매튜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요. 저 역시 이번 인터뷰를 통해 누나가 생전에 제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누나 역시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며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믿어요.”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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