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창선]최순달 박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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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선 KAIST 명예교수
홍창선 KAIST 명예교수
18일 돌아가신 최순달 KAIST 명예교수는 한국 우주·통신기술 도전 역사의 상징이자 국가 과학기술 헌신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아온 분이다. 과학기술 불모지에서 대한민국을 인공위성과 통신 선진 강국으로 이끌어낸 지도자이자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표현한 대로 “인간이 살아온 길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 여정”을 마치고 영면했다. 그의 인생 여정 그 자체가 한국 과학기술 역사의 현장이자 기적 같은 드라마였다.

고인은 교육자이자 기술자이고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진 행정가이기도 했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근무하던 중 국내의 금성정밀 연구소장으로 취임해 국방 유도무기 레이더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고인은 1981년 전자통신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TDX 전자교환기 개발을 시작해 체신부 장관을 지내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여는 초석을 만들었다. 수많은 직책을 수행했지만 그중에서도 영재교육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과학기술대학(KIT) 초대 학장을 맡은 뒤 이후 서울에 있던 석박사 과정의 한국과학원을 통합해 지금의 KAIST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을 만하겠다.

고인은 과기대 학생 10명을 영국의 서리대에 보내 소형 위성 제작 기술을 습득하게 한 것을 단초로 인공위성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우리별 1호를 쏘아올린 쾌거의 주역이기도 하다. 우리별 1호는 영국 서리대와 공동 제작한 소형 위성에 불과했지만 인공위성 개발 기술의 불모지인 우리나라가 쏘아 올린 최초의 위성이 됐다. 이어 KAIST에 인공위성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맡으며 우리별 2호와 3호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여기에는 현대전자 사장이었던 정몽헌 회장의 지원에 힘입은 바도 컸다. 정 회장은 우주사업부를 만들고 미국의 ‘글로벌 스타’ 사업 중 통신과 위성 제작 분야에 참여하는 등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정 회장의 지원 덕분에 KAIST 인공위성센터 연구실 실험실 지상국 청정실 등과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40t급 안테나를 설치할 수 있는 건물에서 우주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인공위성센터의 우리별 개발 주역들과 벤처회사 쎄트렉아이를 설립한 뒤에는 말레이시아에 소형 위성 ‘라자크샛(RazakSAT)’에 이어 두바이샛 등을 만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수출이라는 새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1990년 초만 해도 국내 인공위성 분야는 척박했으나 고인 덕분에 불과 15년 만에 인공위성 수출국으로 변모한 것이다. 생전에 고인이 뿌듯해했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최 박사의 인공위성 수출은 대기업도 아닌 대학에서 창업한 작은 벤처기업의 활약상으로 우리 대학이 본받아야 할 창업 사례이기도 하다. 인공위성센터와 오늘날 쎄트렉아이의 지속적인 성공과 성장을 보며 후대들은 그가 살아온 우주로 향한 꿈의 흔적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AIST 캠퍼스의 인공위성센터에 있는 위성 안테나는 지금도 쉬지 않고 신호를 받고 있으며, 최 박사의 후배들에게 주는 외침이 들린다.

대한민국은 최 박사 같은 훌륭한 과학자와 수많은 선배들이 마른 땅을 노동과 억척으로 개척해 놓고 그 위에 후배들이 발전과 개척을 한 결과 이만큼 성장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최 박사의 생전 모습이 어른거린다. 박사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조국 대한민국의 앞날을 지켜봐 주세요.

홍창선 KAIST 명예교수
#최순달 박사#인공위성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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