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처럼… 투박하지만 정직한 詩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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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념시집 낸 노동자 시인동인 ‘일과시’

2003년 7집 ‘아직은 저항의 나이’ 출간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인 동인 ‘일과시’ 시인들. 일과시 제공
2003년 7집 ‘아직은 저항의 나이’ 출간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인 동인 ‘일과시’ 시인들. 일과시 제공
‘길거리에서 남의 가게 간판을 달아주는 막노동꾼으로, 공사판 철근장이로, 답답하고 위험한 철길을 달리는 노동자로, 힘든 사회복지사로, 밥 먹듯이 한뎃잠을 자는 희망버스 기획자로, 빈 들녘을 지키는 산골 마을 농부로, 가난한 시인으로….’

노동자 시인동인 ‘일과시’가 창간 20주년 기념 시집 ‘못난 시인’(실천문학사·사진)을 펴냈다. ‘일과시’의 유래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기업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보가 제작됐다. 노보에 글을 쓰거나 노동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시인들이 모여 동인을 만들었다. ‘일과시’는 일하면서 시 쓰는 사람이란 뜻.

‘일과시’는 1993년 첫 시집 ‘햇살은 누구에게나 따스히 내리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2005년까지 8권의 시집을 냈다. 지난해 20주년 기념 시집을 내기로 했다가 준비가 늦어져 올해 발간했다. 여기엔 10명이 각 10편씩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김해화 시인은 전국을 다니며 공사판 철근장이로 일한다. 그는 밀린 임금을 요구하다가 현장소장이 휘두른 물건에 맞아 숨진 동료를 추모하는 시를 썼다. ‘밤낮없이/너는 죽어버려서 떠날 수 없고/나는 살아 있어서 떠날 수 없는 공사장/누운 채 비에 젖는다//죽은 너는 좀 짧고/살아 있는 나는 좀 길다/같이 녹슨다’(‘산 철근이 죽은 철근에게’ 중)

간판장이로 일하는 김용만 시인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동생이다. 그는 전국으로 흩어진 여섯 남매 이야기를 시로 풀었다. ‘우리 여섯 남매/전국적으로 흩어져/보고 싶어도 살기 위해/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산다//(중략) 우리는 가난 때문에/뿔뿔이 흩어져/그야말로 전국을 점령했다’(‘전국적으로’ 중)

노동의 최전선에서 일궈낸 그들의 노동시는 어떤 의미일까. “일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 보람, 아픔을 시로 쓰고 노래하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때 세상도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겁니다.”(서정홍)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일과시#못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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