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영화 찍다 20억짜리 만드니 얼떨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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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으로 에로물 감독 딱지 떼는 박범수 감독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박범수 감독은 “성인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면 변태 취급 받는다. ‘레드카펫’이 오해를 풀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박범수 감독은 “성인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면 변태 취급 받는다. ‘레드카펫’이 오해를 풀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3일 개봉하는 박범수 감독(36)의 ‘레드카펫’은 10년차 성인영화 감독(윤계상)과 여배우(고준희)의 로맨스물이다. 공교롭게도 박 감독은 에로물 감독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 업계에 입문한 박 감독은 인터넷TV(IPTV)와 모바일에 공급되는 성인용 콘텐츠를 만들었다. 10년 넘게 찍은 작품은 ‘해준대’(‘해운대’ 패러디) ‘나도 아내가 입었으면 좋겠다’(‘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비롯해 270여 편. 매달 평균 두 편의 에로물을 쓰고 찍어 ‘에로계의 공장장’으로 불리는 그는 상업영화 데뷔작인 레드카펫에 “성인영화판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90%가량 담았다”고 했다. 레드카펫은 ‘15세 이상 관람가’다.

―성인물 감독이 된 계기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서 일했는데 성인물 매출만 높으니까 회사가 아예 제작에 나섰다. 그 후 성인영화 감독 아래서 대본을 쓰고 연출도 하게 됐다. 학원에서 영화 만드는 법, 시나리오 작법을 배우면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6박9일’(‘1박2일’ 패러디) 같은 예능 에로물을 비롯해 기존 성인영화의 틀을 깨는 시도를 했다.”

―270편이면 엄청난 다작이다.

“보통 촬영이 하루, 길면 이틀 걸린다. 제작비는 200만∼400만 원 정도, 블록버스터급은 800만 원도 쓴다. 다작을 하니 사장이 좋아했지. 성인영화는 많이 찍을수록 남는다. 이번 영화는 20억 원이 들었는데 얼떨떨하다.”

―상업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성인영화를 만드는 게 부끄럽진 않았지만 부모님께 ‘저 아이덴찌찌(‘아이덴티티’ 패러디) 찍었어요’ 할 순 없었다. 서른 살 전에 성인영화계를 접수하고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에로물 감독 출신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나.

“그 경력은 없느니만 못했다. 지방대(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 출신 비전공자라는 학력도 장애였다. 성인영화로 돈 번 제작사가 상업 영화 만들 때는 좋은 대학 출신 감독을 쓴다.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2012년 부산영상위원회 지원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선작’ 타이틀이 붙으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서러운 일이 많았나 보다.

“성인영화 쪽에선 다 겪는 일이다. 여배우들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연락이 끊긴다. 아내에게 직업을 숨기고 일하는 남자 배우도 있다. 3, 4년 상처받으면 극복된다. 후배들이 푸념하면 ‘넌 아직 멀었다’고 얘기한다.”

―‘15세 이상’ 영화로 만든 건 이제 성인영화계와 선을 긋겠다는 건가.

“원래 19금으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모니터 시사에서 불쾌해하는 관객이 많았다. 노출 장면을 작은 화면에서 보다가 큰 스크린으로 보니 충격적이긴 했다. 정사 때문에 정서가 끊기면 안 된다. 사실 내 특기가 에로는 아니다. 뭘 찍어도 야하게 찍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야기가 강한 편이었다. 시사회 때 아버지가 오셔서 처음으로 내 영화를 보셨는데 찡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노팅힐’처럼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나리오도 여러 개 써 놨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박범수#레드카펫#성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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