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진]덕수궁 석조전 구경 가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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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덕수궁의 본전인 석조전이 5년간의 내부 복원과 전시공사를 마치고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얼마 전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궁은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다.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란 갔던 선조가 환도하여 임시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내렸다.

1894년 7월 일본은 조선을 전쟁터로 삼아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다음 해 10월에는 왕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종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경복궁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고종은 조선을 제국으로 높이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대결단이었다. 새 제국의 본궁으로 항일의 역사가 드리운 경운궁을 확장해 쓰기로 했다. 중화전, 함녕전 등 몇 중심 건물이 완공되자 1897년 2월 20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간 지 1년 만에 이곳으로 환궁하였다. 이해 10월에 고종은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서고하고 황제로 등극하여 대한제국을 출범시켰다. 시해된 왕비를 황후로 추존하여 2년 만에 국장을 지내 원혼을 위로하였다. 대한제국 본궁 경운궁 건설에는 이처럼 고종황제의 절절한 극일(克日) 의지가 서려 있었다.

조선왕조의 4대 궁은 모두 서울의 북편 구역에 위치한다. 군주는 남쪽을 바라보면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유교 정치사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본궁인 경운궁만은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문 앞에 크지 않은 광장을 만들고 여기서 도로가 여섯 갈래로 뻗도록 길을 새로 내고 확장했다. 19세기 후반 서양 열국의 수도에 유행한 방사상 도로체계가 대한제국의 본궁 앞에 도입된 것이다. 고종은 제국 출범을 앞두고 서울 도시개조사업을 일으켜 종로, 남대문로를 넓히고 전차를 달리게 하여 서울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고종의 근대국가 만들기 노력은 일본 침략주의에 꺾였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선언되자 일본은 고종이 항일전선에 다시 나설 것을 우려해 독살하였다. 그 인산(국장)을 계기로 3·1운동이 일어났다.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만세 함성의 힘으로 세워진 상하이 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민국이란 뜻으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석조전의 대한제국 역사관에는 이런 애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덕수궁#석조전#대한제국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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