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버리고, 내 틀을 깬 102번째 영화… 가슴 설레긴 처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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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등 국제영화제 초청… ‘화장’ 찍은 78세 임권택 감독

3일 부산 해운대구 월석아트홀에서 함께한 영화 ‘화장’의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규리 안성기 김호정 씨(왼쪽부터). 임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1회 때부터 빠짐없이 왔는데,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방지영 동아닷컴 기자 doruro@donga.com
3일 부산 해운대구 월석아트홀에서 함께한 영화 ‘화장’의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규리 안성기 김호정 씨(왼쪽부터). 임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1회 때부터 빠짐없이 왔는데,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방지영 동아닷컴 기자 doruro@donga.com
“102번째 영화 ‘화장’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차곡차곡 쌓여온 무언가를 돌이켜보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요.”

여든을 바라보는 거장의 눈빛이 어찌 그리 새근할 수 있을까. 5일 부산 해운대구 월석아트홀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 감독’ 임권택 감독(78)은 영화 101편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것 같았다. 감독 자신도 “이렇게 관객 반응이 궁금했던 적은 처음”이라면서 “일일이 묻고 싶을 정도”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언론에 공개한 ‘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투병하는 아내(김호정)에게 헌신하면서도 젊은 부하 직원(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안성기)의 내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으며 올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임 감독은 “칸에서도 제의가 왔는데 당시 시간적 제약으로 완성된 편집본을 보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간 찍은 영화에선 언제나 ‘한국적인 것’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어디서 상이라도 받으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욕심도 있었죠. 나이 들어 보니 인생에서 욕심이란 끝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엔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살아온 나이만큼 보이는 세상을 담담하게 담으려 했습니다. 편집도 이전과 달리 아주 젊은 전문가와 함께 공을 들였죠.”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임 감독은 “촬영 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한 달 정도 앓아누웠다”며 “뭣보다 작가가 만든 문장의 힘을 영상으로 옮기는 게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흥행도 안 되는 감독이 맘대로 찍을 수 있겠냐”며 웃어넘겼다.

이날 기자회견엔 배우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씨도 참석했다. 안 씨는 ‘취화선’(2002년) 이후 12년 만, ‘하류인생’(2004년)에 출연한 김규리 씨는 10년 만에 임 감독과 다시 작업했다. 두 사람은 “안 불러줄까 걱정이지 누구라도 영광스럽게 응할 것”이라며 “촬영이 쉽지 않지만 임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배우고 얻는 게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한부 아내 역을 소화한 김호정 씨는 회견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영화 ‘나비’로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 이후 활동이 뜸했던 이유가 건강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오랫동안 아팠던 기억 탓에 출연을 고사하려다 운명인가 싶어 받아들였다”며 “투병 장면을 찍으며 노출이 상당했지만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

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화장#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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