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비만-천식도 항생제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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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마틴 블레이저 지음·서자영 옮김/320쪽·1만6000원·처음북스

배 속 태아는 양수 속에서 무균 상태로 있다가 출산 때 산도와 질에서 미생물을 처음 만난다. 이 미생물은 신생아의 소화와 면역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제왕절개에선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인체에 있는 미생물은 양면성이 있어 흔히 위암의 주범으로 꼽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역류성 식도염을 막는 역할을 하는 착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아일보DB
배 속 태아는 양수 속에서 무균 상태로 있다가 출산 때 산도와 질에서 미생물을 처음 만난다. 이 미생물은 신생아의 소화와 면역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제왕절개에선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인체에 있는 미생물은 양면성이 있어 흔히 위암의 주범으로 꼽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역류성 식도염을 막는 역할을 하는 착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아일보DB
이 책은 가급적 제왕절개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이유는 뜻밖에도 미생물 때문이다. 엄마 배 속의 양수에서 무균 상태에 있던 태아는 출생 때 산도(産道)와 질을 지나며 ‘락토바실리’라는 미생물(박테리아)을 흠뻑 뒤집어쓴다. 일부는 입에 묻어 있다가 젖을 빨면서 위장 속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몸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락토바실리를 산도와 질에 잔뜩 준비시켜 놓는다. 락토바실리는 엄마 초유에 있는 올리고당의 분해를 쉽게 해주고 신생아의 장을 차지하려는 유해균을 억제해 신생아의 소화와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왕절개에선 당연히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미국 뉴욕대 의대 학장과 미국전염병학회장을 지낸 저자는 현재 뉴욕대 인간미생물군집 프로젝트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인체와 미생물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 책에서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여러 도전을 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인간 위 속에서만 사는 박테리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역할이다. 이 박테리아는 위염, 위궤양 나아가 위암의 주범으로 꼽힌다. 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 등은 이 연관성을 밝힌 공로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최근 급증하는 역류성 식도염을 비롯해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등을 억제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제시한다. 흔히 위 질환을 막기 위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제거하는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제거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는 것. 이처럼 인간의 몸에 있는 미생물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세포 수는 30조 개. 반면 인간의 몸에 거주하는 미생물은 100조 개에 달한다. 이들 무게만 1.4kg으로 뇌의 무게와 비슷하다. 이들 미생물은 단순히 더부살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화와 면역 기능 증진, 호르몬 생산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인간의 몸에 상주하는 일부 박테리아는 병원성 박테리아가 인간의 몸에서 우세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결국 인체와 미생물의 균형, 미생물과 미생물 간의 균형 속에서 인간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균형을 항생제의 남용이 깨뜨리고 있다. 1940년대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후 병원성 박테리아로 인한 폐렴 결핵 농양 성병 등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을 거의 완벽히 퇴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생제가 병원성 박테리아만 잡는 게 아니라 인체에 당장 유익한, 또는 비상시에 필요한 박테리아까지 함께 없애고 있는 점이 문제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박테리아 퇴치에 유효한 항생제는 치료 효과가 없다. 하지만 감기가 폐렴 등으로 번질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모든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한다. 평균 100명 중 1명이 갖는 위험성 때문에 나머지 99명은 쓸데없이 항생제를 먹는 셈이다.

저자는 비만 천식 당뇨병 등 현대병도 항생제 남용과 관련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만의 경우 장 내에서 영양 흡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박테리아가 항생제로 인해 크게 줄어들면 흡수량이 늘면서 살이 찌게 된다는 것. 축산업자들이 가축의 살을 찌우기 위해 특별한 병이 없어도 항생제를 놓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저자는 항생제 남용으로 돌연변이 병원균을 억제할 박테리아가 없어진 수백만 명의 인류가 신종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프랑스 보건당국의 구호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항생제를 써 ‘인간과 세균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항생제#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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