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자금 못 갚는다고 탕감하면 모럴 해저드 낳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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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기금 이사회가 어제 학자금 대출 연체금 감면을 골자로 한 ‘한국장학재단 채권인수’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학자금을 연체하고 있는 5만8000명이 연체액 2883억 원 가운데 1100억 원을 탕감받는다. 채무조정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연체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채무를 갚고 있는 이들은 허탈해질 수 있다.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은 등록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소득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를 넘을 때까지는 대출금 상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기존 학자금 대출과 다르다. 당시 ‘소득이 생기면 빚을 갚으라’란 설계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고, 연간 1조8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돼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서민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강행됐다. 결국 우려한 대로 4년 만에 상당수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정부가 손실을 떠안게 됐다.

국민행복기금이 인수한 것은 대출 회수율이 20%도 안 되는 악성 채무자의 채권이다. 가뜩이나 복지수요가 늘어나 국가재정에 구멍이 뚫린 마당에 학자금 대출까지 국민 세금으로 물어주게 된 셈이다. 더구나 이번 조치는 학자금은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지거나 성실하게 학자금 채무를 갚는 이들과의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대학 졸업자들의 학자금 부채가 2013년 기준으로 1조800억 달러(약 1300조 원)나 될 정도로 골칫거리다. 공적 학자금의 대부분을 정부가 지원함에 따라 재정까지 부실해지는 형편이다. 학자금 상환의 근본 해결책은 취업이다.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것도 취업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러나 손쉬운 학자금 대출이 대학 진학을 유도하지만 정작 취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국민 전체의 부담을 키운다면 복지정책의 선한 의도라고 합리화될 수는 없다. 학자금 연체금을 정부가 떠안는 정책을 지속할지 말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학자금#모럴 해저드#국민행복기금#한국장학재단 채권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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