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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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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자들]<5·끝>체코 태생 프랑스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

《 제4회 박경리문학상의 마지막 후보는 체코 태생 프랑스 망명 작가 밀란 쿤데라(85)다.
현존하는 최고의 현대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국내에서 70만 부 이상 팔렸다.
올해 그는 14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펴냈다.
그의 작품세계를 소설가인 최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소개한다. 》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은 밀란 쿤데라의 첫 번째 소설 ‘농담’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금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작가”라고 썼다. 쿤데라를 향한 국내 독자들의 사랑도 각별해 프랑스 밖에서 그의 전집이 처음 출간되기도 했다. 민음사 제공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은 밀란 쿤데라의 첫 번째 소설 ‘농담’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금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작가”라고 썼다. 쿤데라를 향한 국내 독자들의 사랑도 각별해 프랑스 밖에서 그의 전집이 처음 출간되기도 했다. 민음사 제공

국내에서 출간된 쿤데라 전집의 속표지에는 단 두 줄의 작가 소개가 있을 뿐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이 간결함이 쿤데라의 명성과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체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하면서부터 일관되게 그의 작품 주제가 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그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쿤데라 초기 작품세계는 체코 망명자들의 현실이나 유럽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두드러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적 서술과 유머, 미미해 보이는 일상적인 사실들과 거대 역사의 문제를 공히 동일한 위상에서 해석하고 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설 속에 용해해내는 쿤데라 고유의 소설관을 확립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생존 작가에게는 매우 드물게 할애하는 ‘플레이아드 총서’에 쿤데라 전집을 포함시킴으로써 경의를 표했다. 프랑스 메디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국립도서관상 등 국제적 문학상 또한 쿤데라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을 칭찬했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도 여러 번에 걸쳐 그의 작품을 수상 후보로 주목했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쿤데라의 ‘불멸’과 ‘향수’ 두 작품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쿤데라의 작품이 그렇듯이 ‘불멸’은 체코어로 쓰이고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향수’는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세 번째 작품이다.

1990년에 발표된 ‘불멸’에서 쿤데라는 외부 서술자로 등장해 소설가의 상상으로부터 인물과 사건이 만들어지는 창작 과정을 숨기지 않는 독특한 소설을 선보인다. 과장된 표상적인 이미지와 잡음으로 상징되는 소멸적인 현대문명에서, 그 흐름에 저항하는 예술과 문학, 더 나아가 개인적 존재가 엮어내는 불멸의 테마를 쿤데라는 자유롭고도 풍요한 사색의 현란한 조각들로 직조해낸다. ‘불멸’은 “극적 긴장은 소설의 불행”이라는 쿤데라 소설론의 일단을 보여주듯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 ‘얼굴’ ‘불멸’ ‘투쟁’ ‘호모 센티멘탈리스’ ‘우연’ 등 소제목 주위로 그가 창조한 인물군과 괴테, 헤밍웨이, 베토벤과 릴케가 시공을 뛰어넘어 종횡무진 교류하는 것이다.

쿤데라는 ‘향수’에서 다시 한번 고향을 떠난 망명자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소설은 한때 서로 알고 지내던 두 인물, 체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레나와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가 프라하에서 보낸 며칠을 변주곡처럼 그려낸다. 소설에서 쿤데라가 자주 불러내는 ‘오디세이아’ 율리시즈의 여정과는 달리 이들 망명자들에게 귀향은 불가능하다. 인물들의 사랑은 결렬되며 그들이 찾는 누이 같은 평안도 우정도 더 이상 프라하에는 없다. 프라하뿐인가. 현대에서 실존은 어디서나 망명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쿤데라는 ‘향수’를 통해 경험하게 한다.

소설가인 자신을 드러내 개인적인 친밀감을 만들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건조한 관찰로 서술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이끌어내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쿤데라가 옹호하는 고전주의 미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두 작품에서 잘 드러나듯이 영원한 사랑, 원천으로의 회귀나 귀향 등 변하지 않는 존재적 가치들이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에세이와 소설, 자전과 역사, 일상과 철학같이 상이한 범주를 잘 융합한 소설 장르에서뿐 아니라 시, 희곡 등에서도 빛을 발하는 쿤데라의 재능은, 일생을 문학에 포획당한, 연륜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문학적 삶을 산 작가의 표본을 제시하고 있다.

○ 최윤 심사위원은…

본명 최현무. 서강대 불문학과 교수. 소설가. 저서로 ‘오릭맨스티’ ‘첫만남’ ‘마네킹’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겨울, 아틀란티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제4회 박경리문학상#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무의미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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