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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美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배우 벽 허문 최초의 ‘만능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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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美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배우 벽 허문 최초의 ‘만능 연예인’

동아일보입력 2014-09-03 03:00수정 2015-11-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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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뮤지션들②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로큰롤’ 이라는 신장르의 탄생과 발전,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 차트 역사상 싱글차트 1위 곡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남성 솔로가수라는 기록(총 17곡)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DB

임형주 팝페라테너
팝음악을 대표하는 전설의 뮤지션들, 두 번째 시간은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 주의 투펄로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프레슬리는 13세 때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던 1953년 7월, 그의 나이 18세 즈음, 그는 어머니에게 선물하기 위한 기념음반을 녹음하려고 동네에 있던 선레코드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찾아갑니다. 당시 프레슬리는 ‘My Happiness’와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 두 곡을 녹음했는데,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들은 선레코드사의 여직원은 프레슬리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큰 감동을 받아 사장인 샘 필립스에게 그를 소개합니다.

프레슬리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필립스를 만나 가수가 되기 위한 꿈을 본격화합니다. 그는 필립스와 함께 데모곡을 만들고 여러 트레이닝을 받게 되지요. 그러나 프레슬리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필립스를 떠나 당시 메이저 음반사였던 RCA 빅터레코드의 수장인 톰 파커라는 거물과 손잡고 1956년 1월 데뷔 싱글 ‘Heartbreak Hotel’를 발매하였는데, 이 싱글앨범은 데뷔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싱글차트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답니다. 그야말로 화려한 ‘스타 탄생’의 서막이었지요.

데뷔와 함께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프레슬리는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CBS ‘스테이지쇼’ 출연을 계기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데뷔 앨범 ‘Elvis Presley’를 발표합니다. 이 앨범 또한 데뷔 싱글과 마찬가지로 1956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첫 로큰롤 장르의 앨범으로도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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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56년 10월 프레슬리는 싱글 ‘Love Me Tender’(1956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발표해 히트시켰고, 11월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로버트 D 웹 감독의 동명의 영화 ‘Love Me Tender’를 통해 영화배우로도 데뷔하게 되지요. 정말 프레슬리야말로 요즘처럼 가수와 배우의 벽을 허문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 후 프레슬리는 1957년 ‘Too Much’ ‘All Shook Up’과 유명 작곡·작사가 팀인 제리 리버 앤드 마이크 스톨러가 만든 ‘Jailhouse Rock’(이상 1957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등의 노래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인기 절정에 있던 프레슬리는 1958년 3월 미국 육군에 입대하고 같은 해 10월 독일 프리트베르크 기지에 도착해 18개월 동안 군인으로 복무합니다. 프레슬리는 복무 기간에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Hard Headed Woman’ ‘A Big Hunk O' Love’ 등을 통해 공백 기간이 무색해질 만큼의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되지요.

그러던 1967년 5월 프레슬리는 독일 군복무 중에 만난 프리실라 보리외와 결혼을 하며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훗날 프레슬리는 보리외와의 사이에 자신의 유일한 자녀이자 외동딸인 리사 마리를 낳습니다. 마리는 이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결혼합니다. 그는 결혼 후에도 1972년 ‘Burning Love’(197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발표해 히트시키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고, 각종 자선공연과 캠페인 등에 적극 참여하여 사상 최고액의 기부금을 모으는 등 자신의 명성을 남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는 따뜻한 마음씨로 팬들에게 더욱더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슈퍼스타 프레슬리는 정작 자신의 건강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고, 그는 점점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그는 1977년 8월 16일 그레이스랜드의 자택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아무튼 프레슬리는 1972년에 열린 제14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고 사후에도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1998년 컨트리음악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으며, 2006년 그가 살았던 그레이스랜드는 미국 국가문화재로 등록되는 등 개인으로서는 특별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프레슬리는 ‘로큰롤’이라는 신장르의 탄생과 발전, 대중화에 앞장섰고 팝, 로커빌리, 컨트리, 가스펠 등의 장르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빌보드 차트 역사상 싱글차트 1위곡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남성 솔로가수라는 기록(총 17곡)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2014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기록입니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억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음반 판매기록을 세우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그의 기록에 버금가는 음악인은 오직 ‘비틀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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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로큰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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