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리없는 반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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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밑줄 치느라 놓쳤던 것 새록새록 일깨워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속 3편의 작품은 그린 이는 같지만 원작의 분위기에 따라 닮은 듯 다르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애니메이션은 모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림들에는 손맛이 살아 있다. 왼쪽부터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봄봄’.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속 3편의 작품은 그린 이는 같지만 원작의 분위기에 따라 닮은 듯 다르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애니메이션은 모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림들에는 손맛이 살아 있다. 왼쪽부터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봄봄’.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메밀꽃 필 무렵’ ‘봄봄’ ‘운수 좋은 날’….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지만 감상을 위해 접한 이는 많지 않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메밀꽃 필 무렵) 같은 표현을 음미하기보다 ‘시각의 청각화’를 먼저 외웠던 이들에겐 문학보다는 입시용 텍스트로 더 익숙하다.

21일 개봉한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교과서에 밑줄 치느라 놓쳤던 것들을 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애니메이션이다. 근현대 문학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각각 30분 남짓한 세 작품이 이어지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화려한 3차원(3D) 애니메이션 대신 정겨운 2D 애니메이션의 화면 속에 원작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흠뻑 묻어난다.

기획과 콘티, 캐릭터 연출 등을 맡은 안재훈 감독.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기획과 콘티, 캐릭터 연출 등을 맡은 안재훈 감독.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일부러 돈 내고 극장에 와서 볼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개봉 일주일 만에 독립영화 흥행 기준인 누적관객 수 1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열흘째인 지난달 30일까지 1만4000명이 극장을 찾았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멀었지만 서울 10여 개, 전국을 통틀어 30개 남짓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것을 고려하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는 “재밌고 찡하고 근사하다” “교과서로 봤을 때보다 더 와 닿는다” 같은 관객평이 많이 올라온다. 이 작품의 배급사인 이달투의 이상욱 대표는 “의외로 10대 관객보다 어른들이 많이 찾는다”며 “60, 70대 어르신 관객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봄봄’ 속 점순이의 ‘밀당 스킬’에 낄낄거리고, ‘운수 좋은 날’ 속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스크린에 흐드러진 메밀꽃밭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문장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온다.

제작과 연출은 부부 감독인 안재훈(45) 한혜진 씨(44)가 공동으로 했다. 안 감독이 기획과 시나리오를, 한 감독이 채색 등 후반 작업을 주로 담당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안 감독은 “생존 작가의 작품이라면 각색을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원작의 의도를 최대한 드러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면과 대사 하나 허투루 사용하지 않은 게 장점이다. 1인칭 소설 ‘봄봄’에는 판소리를 접목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성우 장광, 엄상현, 배우 류현경 등의 목소리 연기도 작품과 잘 어우러진다.

모든 밑그림 작업을 “손맛을 살리기 위해” 연필로 했다. 총 7만 장을 연필로 그렸단 얘기다.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은 거의 태블릿PC로 작업한다. 그러고 보니 제작사 이름도 ‘연필로 명상하기’다. “연필로 그린 그림에는 애니메이터의 개성이 더 잘 살아 있다. 선 하나, 주름 하나 손으로 정성껏 표현해 그리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애니메이션 방식이다.”(안 감독)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메밀꽃…’을 준비하며 강원 평창을, ‘봄봄’ 작업 때는 춘천을 찾기도 했다.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 경성 관련 자료를 수집해 당시 거리 풍경과 복식 등을 고증했다.

보통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제작비 7억 원이 든 이 작품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된 편. ‘연필로 명상하기’ 외에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출판사 김영사도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연필로 명상하기’는 올해 첫발을 뗀 문학 작품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에는 ‘소나기’와 ‘무녀도’ ‘벙어리 삼룡이’를 선보일 계획인데 매년 3편씩 내놓는 게 목표다. 안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메밀꽃 필 무렵#봄봄#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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