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가라유키상과 성노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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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국제부장
이진 국제부장
일본어에 ‘가라유키상(唐行きさん)’이라는 단어가 있다. 19세기 후반 해외에서 원정 성매매를 하던 일본인 여성을 가리킨다. 나라 밖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알선업자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들의 몸값을 부모에게 건네주고 포주 밑으로 들어간 젊은 여성들이다. 주로 중국 보르네오 태국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멀리 미국 하와이와 아프리카까지 가서 일(?)했다. 당시 일본은 이들을 ‘낭자군(娘子軍)’으로 선전했다고 위키피디아 한국판은 서술한다.

이런 가라유키상 설명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낯이 익다. 바로 일본 일각에서 주장하는 ‘종군위안부’의 프레임과 같다. 업자가 중간에 끼었고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틀이다. 기본적으로 매춘과 다름없다. 그 밑바탕에는 여성들이 자유의사로 일하러 나섰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성(性)의 수요자인 병사들을 자발적으로 따라다니며 몸 팔아 돈 벌었다는 의미가 ‘종군위안부’라는 말에 담겨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병사와 동지적 관계를 맺고 전쟁의 피해자라는 서로의 아픔에 공감했다는 회상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 반대쪽에는 ‘성노예’라는 프레임이 있다. 1996년 나온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한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임명한 스리랑카의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변호사가 주도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로 불린다. 보고서는 위안부를 전시에 군에 의해 또는 군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강요받은 여성들로 규정한다. 쿠마라스와미 변호사는 1995년 한국 서울과 일본 도쿄, 북한 평양을 직간접적으로 찾아 조사했다.

성노예 설명에는 강제와 협박이 전제돼 있다. 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나 처녀들을 위협해서 끌고 가 일본군 병사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로 썼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은 당연히 피해자들일 수밖에 없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가 최근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완전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다시 한번 권고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가라유키상 프레임을 따르는 이들이 주로 일본 영내에 머물고 있다면 성노예 인식에 공감하는 이들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그 배경에는 인권의식 향상, 특히 여성 인권의식의 강화가 놓여 있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10대 여학생을 300명 가까이 납치하자 ‘우리 소녀들을 돌려줘(Bring Back Our Girls)’라는 호소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지 않았던가. 인권에는 국경도, 인종도 장벽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국장급 협의를 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광복절에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지혜와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거리는 가라유키상과 성노예 차이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입증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이 불과 2개월 전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는 무려 1140회를 넘어섰다. 접점을 찾기는커녕 간극을 좁히기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여성의 발언권은 국내외 무대에서 계속 커진다는 점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 맺힌 외침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도 자연 늘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쪽이 어디인지는 일본 지도자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이진 국제부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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