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사물인터넷의 진화와 두뇌의 퇴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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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산업부 차장
이헌진 산업부 차장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편리함을 준다.” vs “삶이 감옥을 닮아간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 PEW리서치의 사물인터넷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사물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와 우려를 소개했다.

조사에 응한 1606명의 전문가 중 83%가 가까운 미래에 사물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다고 예상했다. 이들은 향후 10년 내에 사물인터넷이 거의 모든 곳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물인터넷이 만들 미래의 모습을 근사하게 그리는 이들이 많다. 생활은 더욱 편리하고 풍요로우며 안전하게 진화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상품 재고 등 낭비 요소는 크게 줄어든다. 결정은 더 빠르고 정확해진다.

예를 들어 버스와 지하철 등 교통수단은 실시간 현장 정보와 과거 유사 사례에 기반한 정보 등을 토대로 분석돼 실시간으로 제어된다. 이에 따라 교통 흐름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조절된다. 공장에서는 시장의 수요를 실시간 반영해 제품의 수량과 종류를 자동으로 결정해 생산한다. 재고는 제로(0)에 가까워진다. 침대는 체온 심박수 뇌파 등 신체 신호를 감지해 가장 상쾌하게 잠이 깰 수 있는 시간에 자명종과 오디오를 작동시킨다. 일상생활의 거의 전 영역에서 이런 최적화가 24시간 진행된다. 사물인터넷의 이런 효과를 두고 ‘혁명적 변화’ ‘파괴적 변화’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고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예상되는 폐해도 적지 않다. 우선 보안 위협이다. 그동안 사이버 보안이 뚫린다고 물리적 피해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사물인터넷 시대는 보안 취약이 물리적인 피해로 직결된다. 한 예로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스마트홈’을 해킹해 가스 불을 맘대로 켜고 대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생활 침해는 현재도 골칫거리지만 더욱 큰 피해를 낳는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이 낱낱이 측정되고 저장된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개인의 성향이 분석되고 행동이 예측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취향을 남이 알고 악용한다면?

무엇보다 근본적인 우려는 사물인터넷으로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능력,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장치가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예를 들어 냉장고는 평소 즐겨 먹는 식재료가 곧 떨어진다고 신호를 보내고, 오디오는 날씨에 맞는 맞춤 음악을 소개한다. 고민할 필요 없이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할 것 같지만 선택할 필요가 사라지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간 본연의 능력은 퇴화한다. 우리는 이미 자막이 없이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지인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한다. 또한 내비게이션 탓에 ‘길치’가 되어버렸다.

편리라는 미명 아래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사라진다. 고요하고 조용한 삶을 추구하려면 더욱 큰 결단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모든 사물이 연결되면서 네트워크가 인간을 꽁꽁 묶는 그물이 된다고 걱정한다. 소수가 다수를 감독하는 일이 더욱 쉬워져 노동환경이 크게 악화될지 모른다.

좋든 싫든 사물인터넷 시대가 곧 우리 앞에 펼쳐진다는 점은 명백하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축복으로 만들려면 깊이 있는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헌진 산업부 차장 mungchii@donga.com
#사물인터넷#두뇌의 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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