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떠나 “그 발언 취소하세요, 나도 대법관이오” 격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기로의 대법원, 갈 길을 묻다]전원합의실 난상토론 어떻게
“법 잘몰라 그런 소리” 반박에… 토론도중 자리 박차고 나가기도

“그 발언 취소하세요. 나도 같은 대법관이오.”

전현직 대법관들은 전원합의체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진보 성향 대법관이 근무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더 치열한 논쟁과 설전이 벌어졌다.

몇 해 전 토론 도중 일부 대법관이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렇게 말한다면 판사도 아니다” “적어도 양식 있는 판사라면…”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때 한 대법관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발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해당 대법관이 사과했다고 한다.

토론 도중 한 대법관이 다른 대법관으로부터 “노동법을 잘 몰라서 그런 주장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논박을 당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도 있었다. 결국 이 대법관은 한 달 뒤 열린 전원합의에서 “노동법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새롭게 연구해 봤는데, 여전히 해당 대법관의 견해는 잘못된 것 같다”고 맞받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 9시 반에 시작된다. 전원합의실에 대법관들이 모두 입장하면 보고를 받은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실과 연결된 전용문으로 입장한다. 책상에는 각종 기록과 보고서가 가득해 반대편 대법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대법관들은 오전 내내 사건을 놓고 의견을 나누다 낮 12시 반 무렵 대법원 3층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어 오후 2시에는 지난달 결론을 낸 전원합의 판결을 1층 대법정에서 선고한다. 선고가 끝나면 다시 전원합의실에서 저녁때까지 합의를 계속한다. 전원합의가 오후 8시를 훌쩍 넘기는 일도 있다.

전원합의를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합의할 때는 나이나 기수와 관계없이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최종 의견을 표명할 때는 13명 중 가장 후임 대법관부터 선임 대법관 순으로 발표한다. 자유로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대법원장은 가장 마지막에 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의견 표명 전에 다수의견이 결정되면 대법원장은 통상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 의견이 6 대 6으로 갈릴 때는 대법원장은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지만 이때도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한두 차례 합의를 다시 거친다고 한다.

전원합의가 끝나면 대법관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김용담 전 대법관은 “치열한 논쟁을 벌인 만큼 함께 화합하는 성격의 자리지만 감정이 채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대법관들이 보일 때도 있다”고 전했다.

장관석 jks@donga.com·신나리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실#난상토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