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구현]지금 가장 필요한 경제정책은 이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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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현 KAIST 초빙교수
정구현 KAIST 초빙교수
7월 24일에 발표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은 한국이 일본 경제의 20년 이상 침체를 답습하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을 보면 1990년대 일본 정부의 정책 대응과 비슷하다.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디플레이션과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1990년대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기인한다. 필요한 구조조정은 미루면서 재정 확대로 불황을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1991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68.8%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세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기부양책을 남발하면서 6년 후인 1997년에는 109.1%로 무려 40%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번에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도 근본적인 구조조정은 외면하면서 확장적인 거시정책으로 경기를 살려 보겠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하고 임시방편 대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이 40조 원을 지출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부채만 늘리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번에 발표된 정책에는 필요한 구조조정에 반(反)하는 정책과 기업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만큼은 주택 시장을 정상화하려는, 필요한 조치로 평가된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는 비효율적인 공공부문, 왜곡된 노동시장, 약화된 기업가정신 이 세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우리 경제의 세 부문(정부, 기업, 가계) 중에서 돈을 가장 헤프게 낭비하는 부문이 정부이다. 정부의 방만하고 낭비적인 사업과 지출은 주변에 널려 있으며, 공기업의 비효율은 더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민영화’는 전혀 추진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제 ‘민영화’는 금기어가 되어 버렸는데, 좌파들의 프로파간다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먹혔던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노동시장 왜곡에 대해서도 대증적인 처방만 있고 근본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노동시장의 문제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노동력 부족과 일부 대기업의 과도한 급여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며, 중소기업들의 인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강성 노조가 주도하는 일부 대기업의 임금 상승은 다른 대기업의 임금 상승을 유도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며 그 결과 새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대기업은 정규직의 과다한 급여와 경직적인 인건비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있고 임금이 싼 비정규직에 의존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과대보호와 고(高)급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급여를 올려주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거꾸로 가는 대책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국내 투자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노동력 부족과 높은 인건비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대졸 초임은 대만의 3배에 달하며, 은행이나 대기업 급여 수준은 미국이나 선진국을 능가하고 있다. 새 경제정책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정책은 있지만 근본적인 노동시장의 문제를 타개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노사정 대화 복원’은 필요한 첫걸음이기는 하나 노동시장에 대한 절박한 문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약화되는 기업가정신에 대한 근본 대책은 규제 철폐와 경영자원 시장의 활성화이다. 하지만 새 경제정책에는 서비스 산업 규제 철폐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철폐회의는 일회성 행사로 끝난 감이 있다.

대기업이나 은행이 움켜잡고 있는 자금, 인력, 노하우 등을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하려면 새로운 기업가와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 과점 은행의 비효율을 극복하려면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가 필요한 식이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궁여지책이며 하책(下策)이다. 사업 기회가 많다면 어느 기업이 돈을 금고에 쌓아 놓고 있겠는가. 규제가 풀리고 인건비 부담이 줄면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다.

현재 가장 긴요한 경제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 철폐 이 두 가지이다. 노동시장의 개혁은 국회가 중심이 되어서 범국가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며, 규제 철폐는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챙겨야 한다. 이제 구조조정을 미룰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다.

정구현 KAIST 초빙교수
#경제정책방향#최경환#노동시장 왜곡#공기업 민영화#인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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