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무책임한 바람둥이인 ‘나쁜남자’ 헤세, 그의 여인들은 왜 매달리기만 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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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베르벨 레츠 지음·김이섭 옮김/563쪽·1만7500원·자음과모음

1921년 헤르만 헤세(오른쪽)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 이들은 1923년 결혼했지만 4년 만에 이혼했다. 루트는 당찬 여성이었지만 헤세의 사랑을 갈구해 매달렸다는 점에선 첫 번째 부인과 마찬가지였다. 자음과모음 제공
1921년 헤르만 헤세(오른쪽)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 이들은 1923년 결혼했지만 4년 만에 이혼했다. 루트는 당찬 여성이었지만 헤세의 사랑을 갈구해 매달렸다는 점에선 첫 번째 부인과 마찬가지였다. 자음과모음 제공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권력관계는 존재한다. 사랑의 무게를 저울로 측정할 순 없지만, ‘누가 더 상대방을 사랑하느냐’를 놓고 주도권을 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사랑에서 언제나 ‘강자’였다.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며 가끔은 무책임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나쁜 남자’ 헤세에게 숱한 여성들이 ‘희생’을 감내했고, 그에게 매달렸다. 책은 헤세가 혼인한 세 명의 부인과 주고받은 서한을 토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우위’였던 헤세의 ‘나쁜 사랑’을 보여준다.

헤세의 첫 번째 부인은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 헤세와 아홉 살 연상녀 마리아의 관계는 완벽한 ‘갑-을’ 관계였다. 헤세는 늘 신경질적이었고, 가장으로서 무책임했다. 마리아는 남편에게 불평은커녕 저자세로 눈치만 살폈다. 결혼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잠수를 탄 헤세에게 마리아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내가 당신한테로 가야겠어요. 제발 나한테 소식 좀 전해주세요”라고 읍소한다. 또 마리아가 둘째 아들을 출산했을 때 프랑크푸르트로 홀로 여행을 간 헤세에게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출산했어요. 힘든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보냈다. 돈을 버는 가장도 아니었다. 마리아의 부유한 친정아버지가 이들 부부의 ‘백지수표’ 역할을 했다. 마리아의 말년은 불행했다. 우울증을 앓았고, 정신분열 증세도 보였다. 그렇게 매달렸는데도 끝내 헤세와 이혼했다.

헤세의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은 ‘막장 드라마’였다. 헤세는 마리아와 이혼하기 전부터 성악가 루트 벵거와 연애 감정을 키워 간다. 루트는 마리아와 달리 당차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루트는 헤세에게 마리아와 이혼할 것을 종용했고, 결국 그의 부인이 된다.

하지만 이기적인 헤세에게 사랑을 갈구하던 루트는 결국 외로움에 괴로워하다 남편의 친구인 화가 카를 로퍼와 바람이 난다. 같은 시기 헤세 또한 자신의 오래된 팬이자 스무 살 연하의 유부녀인 ‘니논 돌빈’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바람을 피운다. 둘은 결국 이혼한 뒤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니논이 헤세에게 매달리는 모양새는 전 부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대체 헤세의 매력은 무엇인지…. 그를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을 통해 심오한 정신세계를 보여준 작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모 아니면 도’의 반응을 보일 것 같다. 나쁜 남자 헤세에게 또 다른 매력을 느끼거나, 안티 팬이 되거나.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헤르만 헤세의 사랑#바람둥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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