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자세를 낮춰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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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불이 났을 때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①다락이나 창고 같은 뜻밖의 장소에서 혼자 죽는 유형 ②여러 명이 한곳에 모여 죽는 유형 ③뛰어내려 죽거나 깔려 죽는 유형.

성격으로 보면 ①은 머리형 ②는 가슴형 ③은 장(臟)형이라고 한다. 지식에너지를 사용하는 머리형은 이것저것 따지다가, 감정에너지를 쓰는 가슴형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하다가, 힘에너지를 쓰는 장형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는 본능대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머리형, 가슴형, 장형처럼 제각기 대처하면 우왕좌왕하다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공동의 대처요령이나 안전수칙이 필요하다. 소방방재청은 이를 ‘국민행동요령’이라 부른다. 가장 흔한 사고인 화재에 대한 행동요령을 알아보자. 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①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낮은 자세로 대피한다 ②“불이야”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③119에 신고한다 ④소화기를 찾아 불을 끈다 ⑤휴대전화로 촬영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까마득한 초등학생 시절부터 최근 민방위 훈련까지 수십 번도 더 배운 내용인데, 막상 하나만 택하라고 하니 갑자기 막막하다. ⑤번이 아닌 건 알겠는데, 사고를 맞닥뜨리면 어처구니없게도 ⑤번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아마 머리형은 ①번을, 가슴형은 ②번이나 ③번을, 장형은 ④번을 고를 것이다. 정답은 ②번이다.

우리나라의 안전교육은 순서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행동요령은 대충 알고 있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깜깜하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을 발견하면 주변에 알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 다음에 화재 경보를 울리거나 119에 신고하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거나 대피하면 된다. 세월호 참사는 ②번(경보)을 가장 먼저 해야 할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며 학생들을 주저앉혔고, ①번(대피)을 유도해야 할 상황에서 선장과 선원들만 탈출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비상상황이 터졌을 때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불이 나면 젖은 수건으로 호흡기를 가리고 자세를 낮춰 대피하라고 한다. 그런데 왜 자세를 낮추는가? 불이 나면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대표적인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와 시안화수소는 무게가 공기와 비슷하고, 아황산가스를 비롯한 다른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겁다. 자세를 낮추면 유독가스를 마시게 될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왜 자세를 낮추라고 하는가? 이유는 유독가스 때문이 아니라 전도(傳導), 복사(輻射)와 함께 열이 이동하는 3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인 대류(對流) 때문이다. 데워진 공기(유독가스)는 부력(浮力)이 생겨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자세를 낮춰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재난 대피교육이 아니라 위험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위험에 맞서거나 피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이 나면 타 죽을까 봐 두려워하지만 사실 화재로 희생되는 사람의 70∼80%는 유독가스로 죽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독가스는 가벼워서가 아니라 대류 현상 때문에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자세를 낮춰야 한다. 과학이 빠진 교육, 달달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안전교육이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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