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경복궁의 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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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고 시끄러운 서울 도심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경복궁의 주요 건물에 불이 들어온다. 불볕더위가 한풀 꺾이고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경복궁은 낮의 근엄함과는 다른 황홀한 자태를 드러낸다. 조명을 밝힌 경회루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경복궁 내부에서 바라보는 도심 빌딩 숲은 마치 과거에서 미래를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자동차 소음은 간 데 없고 고즈넉함이 가득해 “여기가 서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름철 2주간만 시행하는 경복궁 야간 개장이 갈수록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3일 오후 2시 인터넷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됐다. 하루 1500장만 판매하는 사이트에 57만 명이 접속했다. 표를 사지 못한 시민은 불평하고 인터넷에서는 웃돈을 붙인 암표가 등장했다.

▷올해는 드라마 ‘정도전’ 덕분에 경복궁의 인기가 더한 듯하다. 1394년 태조 이성계는 문무백관과 함께 한양에 도착한다. 개성의 기운이 쇠퇴했다는 이유였지만 개국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고려왕조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개성에서 계속 머물 수 없었다. 이때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경복궁 창건을 주도한 사람이 정도전이다. 그는 근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모든 건물을 배치하고 이름을 지었다. 역적으로 몰린 정도전은 조선시대 내내 금기시됐으나 고종 때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문서가 발견돼 흥선대원군이 복권시켰다.

▷어제는 문화융성 시대를 선포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가 있는 날’이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에는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 전국의 주요 문화시설을 할인가격 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입장료 할인도 좋지만 문화를 향수할 기회를 넓히는 일 역시 중요하다. 고궁을 야간에 개방하면 주간 개장 때보다 문화재가 화재 및 훼손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관리 감독을 강화하면서 국민이 선호하는 고궁 야간 개장의 문호를 넓히는 조치를 고려해 봄 직하다. 나아가 한국의 멋을 간직한 고궁 야간 개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하는 건 어떨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경복궁#야간 개장#문화가 있는 날#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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