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박수경 팬클럽의 병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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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 프리네라는 고급 창부(娼婦)가 살았다. 미모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연극에 전라(全裸) 출연을 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한 것이다.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중죄였다. 그의 연인이자 변호를 맡은 웅변가 히페레이데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충격 요법을 썼다. 법정에서 프리네의 옷을 벗긴 뒤 “이토록 완벽한 아름다움은 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해 무죄를 받아낸 것이다. 19세기 장 레옹 제롬의 그림으로 재현된 ‘프리네의 재판’은 판결마저 좌우하는 미의 위력을 보여준다.

▷세월호 수사와 관련해 경찰에 검거된 박수경 씨의 팬클럽이 온라인상에 개설됐다. 박 씨는 유병언 씨의 장남인 유대균의 도피를 도와 경기도 용인의 오피스텔에 함께 은신했다. 태권도 유단자로 보디가드 역할을 한 그는 검거 당시 단아한 얼굴과 당당한 태도로 ‘미모의 호위무사’라 불릴 만큼 주목받았다. 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팬카페 이름 ‘미녀쌈짱 박수경 팬클럽’이 말해주듯 외모가 첫째 이유일 것이다.

▷악명 높은 범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을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고 한다. 2009년 ‘라이프’지가 발표한 31인의 연쇄 살인마 명단에 올랐던 리처드 라미레즈와 옥중 결혼한 도린이 대표적이다. 잡지 편집장이었던 도린은 13건의 살인을 포함한 숱한 범죄 행각으로 1980년대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라미레즈에게 반해 11년 동안 러브레터를 보낸 끝에 1996년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선 살인범 김길태와 강호순 등의 팬클럽이 생겨 물의를 빚었다. 전문가들은 현실 부적응자들의 심리가 이런 활동으로 표출된다고 풀이한다.

▷외국에선 피고인의 외모가 뛰어나면 배심원들로부터 형량을 감경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도 있긴 하다.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이라면서 심각한 사회적 이슈까지 재미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걱정스럽다. 더욱이 범죄와 연루된 사람의 팬클럽까지 만드는 행태는 정말 깊은 병증(病症)이다. 피해를 당한 희생자들을 한 번쯤 헤아려 봤어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박수경 씨’ 관련 정정보도문]

본 언론은 지난 7. 25.자 “유대균과 함께 검거된 박수경은 누구? 태권도선수 출신 ‘신엄마 딸’” 제하의 기사 등 박수경 씨 관련 보도에서, 박수경씨가 모친 신씨의 지시에 따라 유대균씨를 수행 및 호위무사 역할을 했다고 수차례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박수경씨는 유대균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인해 도피를 도운 것일 뿐이고, 유 씨와의 내연 관계는 사실이 아니며, 호텔 예약도 유 씨와의 은신처 용도가 아닌 해외의 지인을 위한 숙소를 알아보는 과정이었고, 유 씨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개인 경호원 또는 수행비서를 한 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세월호#박수경#팬클럽#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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