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영화에 미친 완벽주의자의 ‘혀를 내두를 내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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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장르의 재발명/진 D 필립스 엮음·윤철희 옮김/372쪽·1만6000원·마음산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베트남전쟁 풍자극 ‘풀 메탈 자켓’(1987년). 마음산책 제공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베트남전쟁 풍자극 ‘풀 메탈 자켓’(1987년). 마음산책 제공

미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은 20세기 영화 팬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 ‘샤이닝’(1980년) ‘풀 메탈 자켓’(1987년) 그리고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9년)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물론 초기 범작도 일부 있지만) 찬사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게 없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심지어 홍보 문구까지 일일이 체크하는 완벽주의자. 미국의 공고한 영화계 시스템과 자본의 간섭에서 거의 유일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찍었던 독불장군(?)이란 점을 빼면, 그냥 수염 텁수룩하고 고집 세 보이는 할아버지 얼굴만 떠오른다. 그런 이에게 이 책은 이미지만 기억되는 한 거장 감독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그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을 엿보노라면, 오히려 정말 ‘영화에 미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프로급 체스 실력을 가진 감독이 호적수인 기자와 장소를 옮겨가면서 새벽까지 자웅을 겨루는 대목은 매사에 열정적인 그의 성격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정열만 넘치는 게 아니라, 자기 영화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해박해지려 노력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국내에 큐브릭 감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첫 번째 책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1959년부터 1987년까지 여러 기자가 인터뷰한 기사를 모아 놓은 거라 한계가 분명하다. ‘풀 메탈 자켓’이 개봉되던 시점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없단 점도 아쉽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난해한 이유에 대해 “나 역시 쉬운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위대한 영화 철학자를 만나는 건 더 없이 반갑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스탠리 큐브릭#영화#풀 메탈 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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