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래 미국사회는 善惡이 모호한 디스토피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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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의 바다 위에서/이창래 지음·나동하 옮김/528쪽·1만4800원·RHK

이 소설에서 독자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중 한 대목이다. ‘인간사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법. 밀물을 타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 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 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겠지. 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 지금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 우리의 시도는 분명 실패하고 말 거요.’ 4막 3장 브루투스의 대사에서 따온 소설의 제목은 서서히 침몰해가는 불확실한 사회에 대한 경고를 암시하는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의 미국 사회다. 이곳은 세 지역으로 나뉜다. 부유하고 자기만족적인 이들이 사는 차터, 노동자 계층이 거주하는 B-모어, 가난한 사람들이 우글대는 자치주. 지역 사이는 높은 담으로 가로막혔다.

주인공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17세 판. 상급 지역에 납품하기 위해 수조에 들어가 물고기를 키우는 잠수부로 일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친구 레그가 사라진다. 제6건물 채소 모판 F-8에서 F-24까지를 책임지는 레그가. 판은 그를 찾기 위해 안락한 B-모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미래 사회에서는 안정이 최우선의 가치이다. B-모어 사람은 각자 주어진 일을 하고 정해진 공동체에서 예측 가능한 삶을 산다. 판은 이 틀을 과감히 벗어난다.

판의 행동은 B-모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연못에 쓰레기를 던지고, 시위에 나서며, 삭발도 한다. 이 사회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자신들이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판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된다.

재미교포인 작가 이창래(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49·사진)는 처음 세 권의 작품 ‘네이티브 스피커’ ‘척하는 삶’ ‘가족’에서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를 다뤘고, 네 번째 소설 ‘생존자’에서는 전쟁이 인간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그렸다. 올 1월 발표한 다섯 번째 장편 ‘만조의 바다 위에서’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담아냈다. 뉴욕타임스는 ‘로봇이나 식인괴물이 등장하는 SF는 아니지만 현재의 실패가 야기한 미래의 모습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판타지의 영역을 선보였다’고 평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만조의 바다 위에서#이창래#미래#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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