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걸]“두 딸을 대하듯 엄마의 마음으로 소송 사건 맡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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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utiful Mind
여성·아동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이명숙

인터뷰 약속 시간이 몇 차례 미뤄질 만큼 이명숙 변호사(51)는 바빴다. 갑자기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가 하면, 인터뷰 당일 중요한 외부 회의로 사무실을 비우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 세월호 참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바로 이 직함이 요즘 이 변호사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드는 이유다. 6백 여 명의 공동 변호인단을 이끌고 생존자, 실종자, 유가족 등 참사 피해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중심엔 늘 이명숙 변호사가 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일명 ‘도가니 사건’을 비롯해 ‘조두순 사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칠곡, 울산 계모 사건’ 등 여성, 아동 인권과 관련한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는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이렇게 아동 학대,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들을 맡아서 분초를 쪼개가며 생활하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를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동 학대 사건에 후배 여성 변호사들과 함께 분노하며 힘 모아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돕는 공익 사건을 도맡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지금은 여성 변호사 수가 3천 8백 여 명이나 되지만 제가 변호사가 된 1990년에는 10 명을 갓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 아동 관련법이나 제도가 거의 정비되지 않은 때여서 관련 문제가 생기면 아동단체나 여성단체들로부터 요청이 많이 왔죠. 여성 변호사라는 이유로요. 그래서 무료 상담, 무료 소송을 지원하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하게 됐죠.

또 제가 대학시절 고시반 장학생 1기였습니다. 4년간 등록금 전액 지원, 기숙사비 무료, 월 생활비 지원 등 많은 혜택을 받으며 공부했죠. 고시에 합격한 후 ‘내가 받은 것을 갚는 길은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방적으로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면서 보니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더라고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한 사람 혹은 한 사건에 대한 변론의 의미보다는 그 사건을 통해 법과 제도가 바뀌고,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 소송을 할 때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법리 해석을 이끌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 통념을 바꾸어가는 작업이라서 쉽지 않죠.”

힘들면서도 이 일을 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해야 되니까요. ‘억울하고 부당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뛰어다니게 만듭니다. 특히 그 억울함과 부당함이 법이나 제도가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라면, 그 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변호인단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는데.

“2009년부터 2년간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이사를 맡으면서 다른 변호사들과 더불어 일해야겠다, 후배들에게 공익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두순 사건 때도 인권위원회 중심으로 진상 조사와 소송을 했고, 도가니 사건, 칠곡, 울산사건 등도 여러 여성 변호사들과 공동으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모두 엄마의 마음으로 나서자’고 호소했죠. 함께 분노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후배 여성 변호사들, 정말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일합니다.”
육아에 있어서는 ‘슈퍼 우먼’이 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나요.


“제가 맡은 사건 때문에 협박을 받거나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죠. 예전에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찾아 온 여성을 쉼터로 연결해 준적이 있어요. 이 사실을 알고 찾아온 남편이 아내를 내놓으라며 폭력배를 대동하고 나타나 갖은 협박을 해왔어요. 혼자 다니기가 겁이 날 정도였죠. 제게는 피해 여성이나 가족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 딸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해왔나요.

“아이들이 어릴 때였어요. 한번은 조찬 회의가 있어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데 비가 오더라고요. 집에 전화를 걸어 큰 딸에게 동생과 밥 먹고 우산 쓰고 학교 가라고 얘기하는데 딸아이가 우는 거예요. 엄마와 언제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요. 돌이켜보니 그 때 한 주일 내내 새벽에 나와 밤중에 들어갔더군요. 마침 그날 회의가 아동학대에 관한 거였는데 어찌나 딸들에게 미안한지 마음이 안 좋았죠.

얼마 전에는 퇴근 후 집에서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둘째가 그러더군요. “엄마가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한 건 알지만 엄마의 딸들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그 자리에서 바로 서류를 덮고 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함께 누워 잠들 때까지 얘기를 나눴어요. 비록 다음 날 밀린 일더미 속에서 허우적대긴 했지만요(웃음).“

이제 법조계도 여성 파워가 대단합니다.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여성 법조인이 많지만 아직도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에는 힘든 환경인 게 현실이죠. 무엇보다 슈퍼 우먼이 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해주곤 합니다. 육아는 남편이나 주위 도움을 확실하게 구해야 해요. 힘들수록 지금 당장 내가 누리지는 못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또 제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 역시 지금 일하는 여성들의 과제가 되겠죠.”

‘바쁜 엄마’이기에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도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감사하다고 그는 말한다. 대학생인 큰 딸은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고등학생인 작은 딸 또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두 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가슴을 터놓고 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결혼은 선택, 내 인생의 주체는 나’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사는 것 역시 이 변호사가 딸들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두 딸을 대하듯 ‘엄마의 마음’으로 법정에 선다는 이명숙 변호사, 그는 자신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사회에 큰 울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다음 행선지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명숙 변호사는…▼

1963년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여성,아동 문제 전문 변호사. 아동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등 여성·아동 인권과 관련된 공익 사건을 주로 맡아 해결해 왔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소송을 계기로 학교폭력 관련 법제화를 이끌어냈고, 아동 성폭력 사건인 ‘조두순 사건’과 장애인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원 사건)’ 소송을 맡아 성폭력에 대한 법제도를 보완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울산, 칠곡 계모 사건’을 맡아 아동 학대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사건’을 맡아 공동 변호인단을 이끌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법률 상담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 · 비즈니스 라이프 코치)
사진/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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