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美-EU 총공세에… 푸틴 “사고조사 협조” 시간벌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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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機 미사일 피격]美, 러시아 격추 개입 공식화
케리 “진실 밝혀라” 러시아 압박… 獨-英-佛 정상, 전화로 제재 합의
푸틴 “우크라 진압탓” 반군 옹호… 서방 제재 ‘소나기 피하기式’ 대응

말레이시아 MH17 여객기 격추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정황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특히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강력한 총공세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를 돕겠다고 밝히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케리 장관은 20일 ABC CBS NBC CNN 폭스뉴스 등 미국의 5개 주요 방송에 잇달아 출연해 “친러시아 반군이 여객기를 격추시켰다는 증거들은 충분하다. 여객기를 격추시킨 부크 지대공 미사일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지원했으며 이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교육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엄청난 양의 증거’들이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에 부크 미사일 사용법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미국이 언급한 것은 케리 장관의 발언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불과 몇 주일 전에 전차와 포대, 각종 로켓 발사대, 무장 병력 수송 수단 등을 실은 150대의 차량이 러시아에서 동부 우크라이나로 넘어왔다”며 “우리가 입수한 영상자료에 따르면 반군은 여객기 격추 사고 직전에 SA-11 미사일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 직후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로 다시 가져가는 동영상도 확보했다”며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는 “러시아가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면서 “러시아는 (여객기를 격추한) 반군을 지원하고 무장시켰으며 훈련시켰다”고 비난했다.

케리 장관은 또 “미국 정보기관이 확보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여객기가 격추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미사일이 발사됐으며 궤적 추적을 통해 이 미사일이 여객기를 격추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케리 장관은 “그동안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한 유럽 일부 국가들에 경종(wake-up call)이 되기를 바란다”며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도 러시아 추가 제재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은 20일 오전 3자 통화에서 EU 차원의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합의했다.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기 피격 사건을 ‘테러 행위(terrorist act)’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방의 총공세에 직면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통화에서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를 돕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각국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21일 크렘린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말에 반군 진압작전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반군을 두둔했다. 러시아의 정치분석가인 미하일 레미코프 씨는 “반군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푸틴의 전략은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림 반도의 안정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부인 전략’은 서방과의 관계를 냉전 이래 최악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율리 니스네비치 러시아 고등경제대(HSE) 교수는 “지금 러시아와 서방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서방이 러시아에 이란식 고립 정책을 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러시아#푸틴#반군#말레이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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